1915년 2월 28일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신상태, 남형우, 김재열, 홍주일, 박영모, 이영국, 김규, 정순영, 서병룡, 황병기 등 13인의 대구 청년들이 안일암에서 회동을 가졌다. 그들은 일제의 감시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시회(詩會)를 가장해 모였다.
당연히 시를 짓는 사람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오랜 회의 끝에 부서별 책임자를 정했다. 외교부장 서상일, 교통부장 이시영과 박영모, 기밀부장 홍주일, 문서부장 이영국과 서병룡, 권유부장 김규, 유세부장 정순영, 결사부장 황병기가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