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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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족(중국어: 畲族 Shezú[*], 중국조선어: 써족)

중국 본토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중의 하나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공인한 56개의 소수민족 중 20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중국의 2000년 통계에 의하면 709,592명이 살고 있고, 야오족과 먀오족과 관련이 깊다.

서족은 푸젠성에서 가장 많은 소수 민족이다. 또 저장성, 장시성, 광둥성, 안후이성 등에도 많은 서족들이 분포하고 있다. 푸젠 성 린장 현에는 소창 서족향이 있고, 저장 성에는 징닝 서족 자치현이 있다.


현재 서족의 대부분은 근처의 하카와 같이 중국어의 여러 어군 중의 하나인 하카어를 쓴다. 독자적인 언어인 서어중국어: 畲语는 몽몐어족에 속하며, 광둥성에 1,200여명 가량의 화자가 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56개 민족의 하나로 동남부의 소수민족이다. 현재 주요 분포지역은 저장성(浙江省) 징닝쉐족자치현(景宁畲族自治县, 경녕사족자치현) 및 푸젠성(福建省), 장시성(江西省), 광둥성(广东省), 안후이성(安徽省) 등지의 산간지역에 산재해 있으며 대부분이 한족과 함께 거주한다. 2000년 통계조사에 따른 인구는 70.9만으로 55%가 푸젠성(福建省), 27.4%가 저장성(浙江省), 12.1%가 장시성(江西省), 4.2%가 광둥성(广东省)에 거주하고 있다. 서족(畲族, 사족)은 한족의 객가인(客家人)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언어와 풍습에 있어 상당히 유사하다.

써족의 주요 거주지는 중국 동남부의 구릉지대로서 평균 해발이 500-1,500m에 해당되는 지역이며 산들이 중첩되고 있다. 또한 해양과도 가까워서 습기가 많다.

써족 거주 지역은 대개 토양이 비옥하며 물산이 풍부하다. 주요 농산품으로는 쌀, 고구마, 보리류, 유채(油菜), 콩류, 담뱃잎 및 감자 등이다. 산지(山地)에서는 대나무 및 다양한 종류의 목재가 많이 생산된다. 써족 주요 거주지의 토산품은 찻잎, 순간(筍干), 땅콩, 유차(油茶), 마(麻), 향고(香菇)버섯, 장뇌(樟腦), 송유(松油)와 각종 약재가 있다. 복건성과 절강성의 찻잎은 명성이 높다. 써족 지역 산지에는 광산자원도 풍부한데 석탄, 철, 금, 구리, 석묵(石墨), 석고(石膏), 유황(硫黃), 운모(雲母) 및 도자기 흙 등과 각종 유색금속이 매장되어 있다.

써족의 민족 기원에 관해서는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풍속 및 문화 등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써족은 요족(瑤族)의 한 갈래가 발전하여 독립된 민족 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써족은 고대 양자강 하류에 분포하였던 월인(越人)의 후예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춘추전국 시대의 월왕(越王) 구천(句踐) 또는 범려(范蠡)의 자손으로서 진한(秦漢) 시대 백월(百越)의 후예 또는 한진(漢晋) 시대 월(越)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써족의 발원지에 관하여는 각지의 써족 지계(支系) 모두 광동성 조주부(潮州府)의 봉황산(鳳凰山)을 민족의 발상지로 인식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써족의 시조인 반호(盤瓠)가 봉황산에 묻혀 있다고 하며, 써족 여성의 머리장식이 봉황양식인 것도 봉황산에 묻힌 시조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서기 7세기 초 수당(隋唐) 교체기에 써족은 이미 오늘날의 복건성, 광동성 및 강서성이 접경하는 산악지대에서 거주하였다. 송(宋)대에는 복건성의 중부와 북부 일대로 계속 이주하였으며 명청(明淸) 시대에 복건성 동부 및 절강성 남부의 산악지역에 대거 출현하였으며 이 시기에 한족이 이주해 오면서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분포상황을 형성하였다. 강주(江州) 동북부의 써족은 원래 광동성 조주부(潮州府)의 봉황산에 거주하였으나 후대에 복건성 정주부(汀洲府)의 영화현(寧化縣)으로 이주하였다가, 대략 송원(宋元) 시대부터 명대 중엽 이전까지 강서성의 동북지역으로 재차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안휘성의 써족은 약 1백여 년 전에 절강성의 난계(蘭溪), 동려(桐廬) 및 순안(淳安)현 등에서 이주하였다.

써족은 역사적으로 한족과 오랜 동안 함께 살거나 교류를 하여 왔기에, 사회발전 및 경제수준 등이 한족과 비슷한 단계에 있어 왔다.

써족이 자신을 부르는 명칭은 “산커”(山客), “산거”(山蛤), “산다”(山達) 등인데, 이 가운데 “거”(哈)와 “다”(達)는 ‘손님’(客人)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써족의 자칭은 ‘산에 사는 손님’ 또는 ‘산을 타고 찾아 온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러한 명칭은 이 종족집단이 대대로 산간지대에서 거주하여 온 역사를 반영한 것이다. 한족이 부르는 명칭인 ‘畬族’(여족, 한어 발음으로는 “써”족)은 화전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남송(南宋) 말기의 사서(史書)에 ‘畬民’(여민) 이라는 기록에서 유래되었으며 당시 이들이 산간에 거주하며 화전(火田)을 경작했던 사실과 관계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진행된 제2단계 민족조사 및 식별사업을 거쳐 1964년 중국의 제2차 전국 인사조사시에 새롭게 인정된 15개 소수민족에 포함되었으며, 동 민족 집단의 공식명칭을 ‘畬族’(여족, “써”족)이라고 정하였다.

써족의 언어는 시노 · 티베트 어계(漢藏語系)의 묘 · 요 어족(苗瑤語族)에 속한다. 실제 생활에서 써족 대부분은 한어(漢語)의 객가(客家) 방언에 매우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나 발음상에 객가어(客家語)와는 다소 다르다. 광동성의 혜양(惠陽), 해풍(海豊), 증성(增城) 및 박라(博羅) 일대에 거주하는 써족은 묘어 갈래(苗語支)의 포노어(布努語)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한다. 써족은 대개 거주지 한어 방언을 말할 수 있다.

써족은 역사적으로 고유한 민족문자가 없으며 한문(漢文)을 통용하여 왔다.

2000년 현재 써족의 6세 이상(6세 포함) 전체 인구의 최종학력 비율을 살펴보면, 미취학자가 9.44%이며, ‘문맹 퇴치반’ 과정 3.43%, 초등학교 과정 49.73%, 중학교 과정 28.59%, 고등학교 과정 4.54%, 중등전문학교 과정 2.34%, 초급대학 과정 1.11%, 대학 과정 0.64%, 대학원 과정 0.03%이다. 한족 및 중국 전체 인구 평균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학력수준이 다소 낮다.

써족의 산가(山歌)는 민족적 특색이 잘 나타나며 써족 민간문학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산가 가운데 써족의 민족기원과 이동과정을 나타내는 《고황가(高皇歌)》와 《인표왕가(麟豹王歌)》가 있고 또한 노동과 생활을 찬양하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잡가’(雜歌), 그리고 한족 소설이나 써족 신화전설 등에서 소재를 따온 《종경기(鍾景祺)》, 《난전옥(蘭佃玉)》 같은 ‘소설가’(小說歌)가 있다.

써족의 전통가요를 부르는 형식은 독창, 대창(對唱), 제창(齊唱) 등의 일반적인 방식 이외에 ‘쌍조락’(雙條落)이라고 부르는 두 목소리의 부분 이중창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이 2개 글자 또는 4개 글자를 선창하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다시 따라 부르는 방식이며, 이는 중국 내 민가(民歌) 부르는 방식 가운데 매우 드문 형식이다.

써족의 민간 공예예술에는 민족의 특색이 잘 나타나는데, 특히 복식의 자수와 두립(頭笠)의 편직(編織)방식이 대표적이다. 써족 부녀자들은 의상과 치마에 각종 꽃과 새 모양은 물론 기하문양을 자수(刺繡)한다. 써족의 두립(頭笠)과 합수건(合手巾)은 편직(編織)형식으로 만드는 특색 있는 민간공예로 명성이 있다.

써족은 복장에서 청색(靑色)과 남색(藍色)을 숭상한다. 남자들의 복장은 한족과 거의 차이가 없다. 여자들은 거주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공통적인 특징은 상의에 자수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복건성 복정(福鼎)과 하포(霞蒲)지역의 써족 부녀자들은 상의의 옷깃, 우측 깃(右襟), 소매 끝 등 거의 모든 곳에 꽃과 새, 봉황 등의 문양을 자수로 장식하였다. 써족 여성들의 복장 가운데 가장 특색 있는 것은 봉황장(鳳凰裝)이다. 홍색의 머리끈으로 머리 정상부분을 꾸며 봉황의 머리를 나타내며, 상의와 치마 등에도 홍색, 황색 실 및 금실, 은실 등으로 테두리에 자수를 놓아 봉황의 목, 몸체 및 깃털을 나타낸다. 또한 허리 뒷부분에도 장식을 하여 봉황의 꼬리를 상징하고 전신에 부딪칠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은(銀)장식을 하여 봉황의 소리를 나타낸다.

최대 분포지인 복건성에는 중국 내 써족 전체 인구의 약 52.9%인 375,193명이 거주한다 (복건성 전체 인구인 34,097,947명의 약 2.1%임). 또한 절강성에도 중국 내 써족 전체 인구의 약 24.1%인 170,993명이 거주한다. 이외에 강서성(77,650명), 귀주성(44,926명)에 다수 거주하며 여타 각 성급 행정구역에는 각기 1천 명 미만의 극소수 써족이 산재한다.

2000년 현재 써족은 향촌지역 거주비율이 75.65%로 중국 내 전체 소수민족 평균치와 같지만 한족(61.83%) 및 중국 전체 인구 평균(63.08%)에 비하여 다소 높다. 반면 도시지역 거주비율 12.26%와 준도시화 지역인 진(鎭) 거주비율 11.18%는 중국 내 전체 소수민족의 도시 및 진(鎭) 거주비율인 11.87% 및 11.57%와 거의 같다.

써족의 주요 거주지는 중국 동남부의 구릉지대로서 평균 해발이 500-1,500m에 해당되는 지역이며 산들이 중첩되고 있다. 또한 해양과도 가까워서 습기가 많다.

써족 거주 지역은 대개 토양이 비옥하며 물산이 풍부하다. 주요 농산품으로는 쌀, 고구마, 보리류, 유채(油菜), 콩류, 담뱃잎 및 감자 등이다. 산지(山地)에서는 대나무 및 다양한 종류의 목재가 많이 생산된다. 써족 주요 거주지의 토산품은 찻잎, 순간(筍干), 땅콩, 유차(油茶), 마(麻), 향고(香菇)버섯, 장뇌(樟腦), 송유(松油)와 각종 약재가 있다. 복건성과 절강성의 찻잎은 명성이 높다. 써족 지역 산지에는 광산자원도 풍부한데 석탄, 철, 금, 구리, 석묵(石墨), 석고(石膏), 유황(硫黃), 운모(雲母) 및 도자기 흙 등과 각종 유색금속이 매장되어 있다.

써족의 민족 기원에 관해서는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풍속 및 문화 등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써족은 요족(瑤族)의 한 갈래가 발전하여 독립된 민족 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본다.1)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써족은 고대 양자강 하류에 분포하였던 월인(越人)의 후예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춘추전국 시대의 월왕(越王) 구천(句踐) 또는 범려(范蠡)의 자손으로서 진한(秦漢) 시대 백월(百越)의 후예 또는 한진(漢晋) 시대 월(越)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써족의 발원지에 관하여는 각지의 써족 지계(支系) 모두 광동성 조주부(潮州府)의 봉황산(鳳凰山)을 민족의 발상지로 인식하고 있다.2) 전설에 따르면, 써족의 시조인 반호(盤瓠)가 봉황산에 묻혀 있다고 하며, 써족 여성의 머리장식이 봉황양식인 것도 봉황산에 묻힌 시조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서기 7세기 초 수당(隋唐) 교체기에 써족은 이미 오늘날의 복건성, 광동성 및 강서성이 접경하는 산악지대에서 거주하였다. 송(宋)대에는 복건성의 중부와 북부 일대로 계속 이주하였으며 명청(明淸) 시대에 복건성 동부 및 절강성 남부의 산악지역에 대거 출현하였으며 이 시기에 한족이 이주해 오면서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분포상황을 형성하였다. 강주(江州) 동북부의 써족은 원래 광동성 조주부(潮州府)의 봉황산에 거주하였으나 후대에 복건성 정주부(汀洲府)의 영화현(寧化縣)으로 이주하였다가, 대략 송원(宋元) 시대부터 명대 중엽 이전까지 강서성의 동북지역으로 재차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안휘성의 써족은 약 1백여 년 전에 절강성의 난계(蘭溪), 동려(桐廬) 및 순안(淳安)현 등에서 이주하였다.

써족은 역사적으로 한족과 오랜 동안 함께 살거나 교류를 하여 왔기에, 사회발전 및 경제수준 등이 한족과 비슷한 단계에 있어 왔다.

써족이 자신을 부르는 명칭은 “산커”(山客), “산거”(山蛤), “산다”(山達) 등인데, 이 가운데 “거”(哈)와 “다”(達)는 ‘손님’(客人)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써족의 자칭은 ‘산에 사는 손님’ 또는 ‘산을 타고 찾아 온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러한 명칭은 이 종족집단이 대대로 산간지대에서 거주하여 온 역사를 반영한 것이다. 한족이 부르는 명칭인 ‘畬族’(여족, 한어 발음으로는 “써”족)은 화전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남송(南宋) 말기의 사서(史書)에 ‘畬民’(여민) 이라는 기록에서 유래되었으며 당시 이들이 산간에 거주하며 화전(火田)을 경작했던 사실과 관계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진행된 제2단계 민족조사 및 식별사업을 거쳐 1964년 중국의 제2차 전국 인사조사시에 새롭게 인정된 15개 소수민족에 포함되었으며, 동 민족 집단의 공식명칭을 ‘畬族’(여족, “써”족)이라고 정하였다.

써족의 언어는 시노 · 티베트 어계(漢藏語系)의 묘 · 요 어족(苗瑤語族)에 속한다. 실제 생활에서 써족 대부분은 한어(漢語)의 객가(客家) 방언에 매우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나 발음상에 객가어(客家語)와는 다소 다르다. 광동성의 혜양(惠陽), 해풍(海豊), 증성(增城) 및 박라(博羅) 일대에 거주하는 써족은 묘어 갈래(苗語支)의 포노어(布努語)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한다. 써족은 대개 거주지 한어 방언을 말할 수 있다.

써족은 역사적으로 고유한 민족문자가 없으며 한문(漢文)을 통용하여 왔다.

2000년 현재 써족의 6세 이상(6세 포함) 전체 인구의 최종학력 비율을 살펴보면, 미취학자가 9.44%이며, ‘문맹 퇴치반’ 과정 3.43%, 초등학교 과정 49.73%, 중학교 과정 28.59%, 고등학교 과정 4.54%, 중등전문학교 과정 2.34%, 초급대학 과정 1.11%, 대학 과정 0.64%, 대학원 과정 0.03%이다. 한족 및 중국 전체 인구 평균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학력수준이 다소 낮다.


써족의 산가(山歌)는 민족적 특색이 잘 나타나며 써족 민간문학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산가 가운데 써족의 민족기원과 이동과정을 나타내는 《고황가(高皇歌)》와 《인표왕가(麟豹王歌)》가 있고 또한 노동과 생활을 찬양하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잡가’(雜歌), 그리고 한족 소설이나 써족 신화전설 등에서 소재를 따온 《종경기(鍾景祺)》, 《난전옥(蘭佃玉)》 같은 ‘소설가’(小說歌)가 있다.

써족의 전통가요를 부르는 형식은 독창, 대창(對唱), 제창(齊唱) 등의 일반적인 방식 이외에 ‘쌍조락’(雙條落)이라고 부르는 두 목소리의 부분 이중창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이 2개 글자 또는 4개 글자를 선창하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다시 따라 부르는 방식이며, 이는 중국 내 민가(民歌) 부르는 방식 가운데 매우 드문 형식이다.

써족의 민간 공예예술에는 민족의 특색이 잘 나타나는데, 특히 복식의 자수와 두립(頭笠)의 편직(編織)방식이 대표적이다. 써족 부녀자들은 의상과 치마에 각종 꽃과 새 모양은 물론 기하문양을 자수(刺繡)한다. 써족의 두립(頭笠)과 합수건(合手巾)은 편직(編織)형식으로 만드는 특색 있는 민간공예로 명성이 있다.

써족은 복장에서 청색(靑色)과 남색(藍色)을 숭상한다. 남자들의 복장은 한족과 거의 차이가 없다. 여자들은 거주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공통적인 특징은 상의에 자수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복건성 복정(福鼎)과 하포(霞蒲)지역의 써족 부녀자들은 상의의 옷깃, 우측 깃(右襟), 소매 끝 등 거의 모든 곳에 꽃과 새, 봉황 등의 문양을 자수로 장식하였다. 써족 여성들의 복장 가운데 가장 특색 있는 것은 봉황장(鳳凰裝)이다. 홍색의 머리끈으로 머리 정상부분을 꾸며 봉황의 머리를 나타내며, 상의와 치마 등에도 홍색, 황색 실 및 금실, 은실 등으로 테두리에 자수를 놓아 봉황의 목, 몸체 및 깃털을 나타낸다. 또한 허리 뒷부분에도 장식을 하여 봉황의 꼬리를 상징하고 전신에 부딪칠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은(銀)장식을 하여 봉황의 소리를 나타낸다.

써족은 산지에 주거함에 따라 과거에는 산지에서 재배가 잘 되는 고구마가 주식이었다. 그래서 써족 사회에는 “늙을 때까지 고구마 요리를 먹는다(番薯絲吃到老)”라는 말까지 있다. 오늘날 써족의 주식은 쌀이고 이외에 밀, 보리, 고구마류 및 콩류 등 다양한 잡곡을 보조식량으로 먹는다. 부식으로 육류와 사계절 채소를 먹는다.

써족 남성은 술을 매우 좋아하며 절강성 경녕(景寧)지역의 써족은 토속주인 녹곡주(綠曲酒)를 즐겨 마시며 복건성 복안(福安)지역의 써족은 고구마로 만든 번서주(番薯酒)를 즐겨 마신다.

써족의 전통적인 주택은 거주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복건성 경녕(景寧)지역의 써족은 황토로 담벽의 토대를 만들고 허리 이상의 윗부분에는 나무를 가로질러 골격을 만든 후 대나무나 나뭇가지 등으로 밖을 덮은 후에 그 사이는 흙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집을 짓는데 이를 진흙 집인 이간(泥間)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흙과 나무를 이용하여 짓는 와방(瓦房)이 보편적이다.

또한 복건성 복안(福安)지역의 써족은 과거에 대나무로 건물 골격을 만들고 대나무 또는 갈대 줄기 등을 엮어 벽을 구성하고 지붕에는 풀이나 나무껍질 등으로 덮는 방식으로 집을 지었는데, 이를 현초료(懸草寮)라고 부른다. 오늘날 이 지역의 써족은 2층 또는 3층집을 지어 사는데, 위층에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식량이나 물건을 둔다.

써족은 분산하여 사는데 대개 몇 가구 또는 수십 가구가 모여 자연적으로 촌락을 형성하였다. 또한 주변에 한족 마을들이 많다. 써족 마을에는 동성동조(同姓同祖)로 공유되는 ‘사당’(祠堂)과 혈연적 유대로 구성되는 ‘방’(房)5)이라는 사회생활 단위조직이 있다.

써족은 일반적으로 같은 성(姓)과는 결혼하지 않으며 특히 반호(盤瓠) 전설에 등장하는 성(姓)끼리는 혼인이 규제되고 있다. 성이 같더라도 조상이 다르면 결혼을 할 수는 있지만 매우 드물다. 2000년 현재 써족의 다른 민족과 통혼율(通婚率)은 49.9%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통혼율이 6번째로 높다.(2000년 중국 인구조사통계)

여자들이 시집을 갈 때는 일반적인 예물 이외에 농기구와 두립(頭笠), 사의(簑衣: 띠 또는 짚으로 만들어 비올 때 입는 옷)를 가져간다.

써족 사회는 역사적으로 화장(火葬)이 성행하였으나, 20세기 전반기에는 토장(土葬)이 보편적으로 행하여졌다. 장례의식 및 절차는 한족과 거의 같다.


역사적으로 써족은 장기간 한족과의 교류와 접촉을 통하여 한족의 문화와 관습 등을 많이 수용한 결과 전통명절과 절기에 있어서도 한족의 명절과 절기의 대부분을 지낸다. 즉 춘절(春節: 구정), 원소절(元宵節: 정월 대보름), 청명절(淸明節), 단오(端午), 중추절(中秋節: 추석), 중양절(重陽節), 동지절(冬至節) 및 제석(除夕) 등을 지낸다.

한화(漢化)의 정도가 깊은 영향으로 민족의 역사가 오래되고 인구가 많은 다른 소수민족들과는 달리, 써족 단독의 고유한 명절과 절기는 없으며 다른 소수민족들과 공통으로 지키는 절기가 있다. 예를 들어, ‘삼월삼’(三月三)에는 잡곡밥을 만들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사월팔’(四月八)에는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對歌) 찹쌀밥 또는 보리밥 등을 먹는다. 조상 숭배를 중시하여 3년에 1번씩 대제(大祭)를 열기도 한다. 절기 중에는 금기도 많은데, 예를 들어, 2월 19일의 관음(觀音) 탄신일에는 분뇨를 버리지 않아야 하며 3월 3일에는 밭에서 일하지 않는다.

써족의 전통적인 신앙은 조상숭배이다. 써족은 민족 시조신인 반호(盤瓠)와 역대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매우 경건하게 지내는데 씨족 토템신앙과 전설 그리고 관련된 노래와 화상(畵像)이 전해져 내려온다. 민간신앙 중에는 다신숭배도 많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일부 지역에는 불교, 도교, 천주교와 개신교를 신봉하기도 한다.


써족은 1개의 현급(縣級) 민족자치구역이 있는데 주요 거주지인 절강성에 경녕 써족 자치현(景寧畬族自治縣, 1984.12.24 설립)이 있다. 이외에 복건성, 절강성 및 강서성 등지의 써족 밀집 지역에 약 30여 개의 써족 민족향(民族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