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집
도암집(陶庵集) | |
대표명칭 | 도암집 |
---|---|
한자표기 | 陶庵集 |
저자 | 이재 |
편자 | 이재의 후손들 |
간행시기 | 1854년 |
간행인 | 이재의 후손들 |
시대 | 조선 |
수량 | 50권 25책 |
판본 | 목활자본 |
소장처 | 규장각, 고려대학교도서관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李縡)의 시문집이다.
내용
50권 25책, 주자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경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앞에는 총 목차가 있고, 각 권마다 세부 목록이 있다.
1∼4권은 시, 5∼7권은 소 ·계가 있다. '입성후진소회소(入城後陳所懷疏)'는 경종(景宗)이 사망한 직후 도성에 들어와 올린 글이다. 저자는 ‘임금은 후사(後嗣)가 없으면 아우가 후사가 된다’는 고례를 거론함으로써 영조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다. 아울러 왕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1]
4권은 서(書)와 기 ·발이 있다. 서계는 1708년(숙종 34) 평안도어사로 있을 때 올린 글이다. 서계의 내용은 인재 수습 ·민폐 ·변경의 군사 문제(邊事) 등을 다루고 있다.[2] 서(書)는 대부분 학문적 입장과 업적을 알 수 있는 기본 자료로서, 안부나 의례적인 수미(首尾)의 번거로운 수식을 하지 않고 학문과 시사(時事)에 관한 요점만 진술하는 데 주력하였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兪拓基)에게 보낸 30여 통을 비롯해 그의 외숙 민진후(閔鎭厚)에게 20여 통, 그리고 제자 민우수(閔遇洙)·박성원(朴聖源)·이인석(李仁錫)·최우(崔祐)·임성주(任聖周) 등에게 보낸 서한인데,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에 대한 질의와 답변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다.[3]
25권은 잡저이다. '심곡서원학규(深谷書院學規)'는 학습의 요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내용은 독서의 순서, 원임(院任)과 원생(院生)에 대한 규정, 서원의 기능과 운영 및 원생이 지켜야 할 도리 등이 정리되어 있다.[4]
26권은 교서와 상량문 ·잠명 ·고축문 ·제문 ·애사가 있다. 27∼46권은 묘비문이, 47∼50권은 시장(諡狀)과 행장이 있다.[5]
지식 관계망
- 이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도암집 | 이재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ekc:writer B |
주석
- ↑ "도암집",
『두산백과』online . - ↑ "도암집",
『두산백과』online . - ↑ "도암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도암집",
『두산백과』online . - ↑ "도암집",
『두산백과』online .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