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 표준영정
작가 | 김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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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1965 |
유형 | (어진, 진영, 초상, 기타) |
크기(세로×가로) | 150×85㎝ (별도 입력값이 없을 경우, "×㎝"를 삭제할 것) |
정의
조선의 문신인 율곡 이이를 묘사한 표준영정이다.
내용
이이 표준영정 제작의 시대적 배경
박정희 정권의 70년대는 유신 정권기의 민주화 세력의 데모와 저항, 계층 및 지역 간의 대립, 內訌을 겪으면서 內憂外患에 감당하기 위해 밖으로는(=外患 대비) 북한 체제의 공격에 대비하는 구국안보 논리를 내세워 武人으로서 충무공 이순신을, 여기에다‘十萬養兵說’을 주장한 율곡 이이를 추가하여‘畿湖’유학의 현실대응에의 기민성을 부각시켜 내세운다. 표준 영정 및 화폐 등을 통한 율곡의 이미지의 창출은 이처럼 우리나라의 구체적 시대적, 이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국민적인 文・武 의 영웅들을 국민적 기억 속에서 찾아내어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체제 확립, 민족주의의 강화 등을 위해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게 된다.[1]
화폐권 발행과 표준 영정
- 율곡 초상화 논란
화폐에서 표준영정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은 1972년 율곡의 초상화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1972년에 5,000원권이 발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율곡의 콧날이 날카롭고 매섭게 표현되어 마치 서양사람 같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것은 5,000원권의 원판을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 사에 제작 의뢰한 결과 빚어진 일이었다.[2]
- 화폐권 발행을 위한 표준 영정의 제작
이외에도 역사적인 인물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마다 인물들의 모습이 조금씩 차이가 나 사회적인 물의를 빚는 일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1973년 6월 선현의 동상 건립 및 영정 제작에 관한 심의절차를 제정하여 동상이나 영정 제작 등에는 반드시 정부가 최종 승인한 표준영정만 사용하도록 조치했다. 한국은행은 1973년 9월에 발행한 500원권의 충무공 초상부터 표준영정을 사용했다. 또한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던 10,000원권과 5,000원권의 초상도 표준영정으로 바꾸어 실어야 했다. 이에 따라 1977년 적당한 높이의 코와 온화한 표정의 율곡 초상이 실린 5,000원권이 새롭게 발행되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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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표준영정 | 표준영정 | A는 B에 해당한다 | |
이이 표준영정 | 이이 | A는 B를 묘사하였다 | |
이이 표준영정 | 김은호 | A는 B에 의해 그려졌다 |
주석
- ↑ 최재목, 「퇴계상(退溪像)의 변모 -초상화(肖像畵)를 통해서 본 선비상(像)의 변천에 대한 시론(試論)」, 『퇴계학보』 vol. 130, 퇴계학연구원, 2011, 234-5쪽
- ↑ 『한국의 박물관 : 화폐』. 네이버 참조: '표준영정 은행권',
『한국의 박물관 : 화폐』online , 한국박물관연구회. - ↑ 『한국의 박물관 : 화폐』. 네이버 참조: '표준영정 은행권',
『한국의 박물관 : 화폐』online , 한국박물관연구회.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이강철, 『역사 인물 초상화 대사전』, 현암사, 2003.
- 김형우, 『고승진영』, 대원사, 2006.
- 신대현, 『진영과 찬문』, 혜안, 2006.
-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유교문화박물관, 『초상, 형상과 정신을 그리다 -2009 정기기획전』, 한국국학진흥원, 2006.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열린박물관, 2007.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눌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