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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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월 2일 (화) 20:0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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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발도(阿其拔都)
Japan general.png
대표명칭 아기발도
한자표기 阿其拔都
생몰년 -1380년
이칭 아기바투(兒只拔都),아지발도(阿只抜都)
사망지 전북 남원
시대 고려 말
국적 일본
유형 장수



정의

고려말 한반도로 쳐들어온 왜구의 소년 수장이다.[1]

내용

아지발도(阿只抜都)라는 이름은 고려군이 붙인 것으로 정식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지발도의 명칭을 한국어의 '아기'와 몽골어 '바토르(용맹한 자)'의 한자 음차표기인 '발도'가 합쳐진 것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2]

문헌기록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太祖實錄)등에 아기발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Quote-left.png "나이 겨우 15, 16세 가량 되어 보이는 한 적장은, 얼굴이 단정하고 고우며 빠르고 날래기가 비할 데 없었다.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달려와서 충돌하니, 향하는 곳마다 쫓기고 쓰러져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이 아기발도(阿只拔都)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태조가 그 용맹하고 날쌤을 애석하게 여겨 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두란이 여쭈어 말하기를, '만일 생포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상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이 얼굴까지 갑옷을 입어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의 꼭지를 쏠 터이니,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쏴라.' 하고, 드디어 말을 달려 나가며 쏘니, 바로 투구 꼭지를 맞히었다. 투구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자, 그 자가 급히 바로 썼다. 태조가 곧 쏘아서 또 꼭지를 맞히니, 투구가 드디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 죽이니, 그제서야 적의 기운이 꺾였다." Quote-right.png
출처: "고려사절요 제31권 / 신우 2(辛禑二)", 고려사절요,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이 내용으로 볼 때 아기발도는 1380년 경 진포대첩, 황산대첩 등의 전투에서 활약한 왜구 측 장수로, 당시 고려군을 지휘하였던 이성계에 의해 죽었다. 이후 전의를 잃은 왜구는 고려군에게 대부분이 진입 당하였고 지리산(智異山)까지 달아난 왜구는 70명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중기 문인 장유(張維, 1587-1638)는 문집인 『계곡집(谿谷集)』에서 "운봉현 동쪽 10리쯤 가면 황산(荒山)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위에 있는 사방 몇 장이 되고 보랏빛으로 피가 스민 듯한 빛이 도는 큰 바위가 있는데, 당시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화살에 맞고 흘린 피가 스며든 곳이다."는 전승을 전하고 있는데, 지금의 남원시 인월면의 남천 강변에 남아있는 피바위가 그것이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진포대첩 황산대첩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최무선 진포대첩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조선 태조 황산대첩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아기발도 황산대첩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아기발도 조선 태조 A는 B와 대립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아기발도 최무선 A는 B와 대립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아기발도 고려사절요 A는 B에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아기발도 조선왕조실록 A는 B에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아기바투, 아기발도", 『doopedia』online, 두산백과.
  2. 위키백과 기여자, "아지발도", 『위키백과』online, 작성일: 2017년 9월 22일.
  3. 위키백과 기여자, "아지발도", 『위키백과』online, 작성일: 2017년 9월 22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