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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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谷城 泰安寺 廣慈大師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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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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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谷城 泰安寺 廣慈大師塔碑 |
이칭 | 대안사광자대사비(大安寺廣慈大師碑) |
주소 |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산18-1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275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01.21 |
찬자 | 손소(孫紹) |
서자 | 미상 |
각자 | 문민(文旻) |
승려 | 윤다(允多) |
승탑 |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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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泰安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광자대사 윤다(廣慈大師 允多)의 탑비.
탑비
전체 높이 158cm, 너비 91cm, 두께 22cm.
귀부(龜趺) 위에 이수(螭首)만 얹혀져 있는 상태로, 비신(碑身)은 파괴되었다. 945년 대사가 입적한 후, 사리탑(보물 제274호)이 조성되고 950년(광종 1)에 탑비가 조성되었다.
조형적인 특징은, 이수의 네 귀퉁이마다 이무기의 머리조각이 돌출되어 있고, 앞면에는 극락조(極樂鳥)로 보이는 새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러한 새 종류의 조각은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53호)이나,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국보 제54호)에서 잘 나타나 있다.[1]
비문
비문의 글씨는 줄을 친 후 새겨 놓았는데, 전체적으로 건강한 힘이 느껴지고 은은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통일신라에 비하여 서예가 훨씬 발전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2]
1832년 청나라 고증학자 유희해(劉喜海)가 우리나라 금석물을 모아 편집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의 기록에는 이 탑 비신(碑身)의 높이 5.2척, 너비 3척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비신이 깨져 오른쪽 상부와 하부가 결실된 잔편이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사이에 놓여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비문은 손소(孫紹)가 지었으며 쓴 사람은 불명이다.[3]
가상현실
답사 이후 추가 예정
갤러리
답사 이후 추가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