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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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16일 (수) 01:07 판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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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指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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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지공
한자 指空
생몰년 ?-1363년
지공(指空)
제납박타(提納薄陀), 선현(禪賢), dhyāna-bhadra(산스크리트어)
출신지 인도 마갈타국(摩羯陀國)
승탑 지공선사부도및석등
승탑비 양주회암사지공선사부도비



정의

원˙고려 시대에 활동한 인도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지공은 인도 출신의 승려이다. 본명은 산스크리트어 dhyāna-bhadra, 제납박타(提納薄陀)라고 음사, 선현(禪賢)이라 번역한다. 중인도(中印度)지역의 마갈타국왕(摩竭陀國王) 만(滿, pūrṇa)의 셋째 아들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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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증조의 휘(諱)는 사자협(師子脇)이고 나의 조(祖)의 휘는 곡반(斛飯)이며 모두 가비라국(伽毗羅國)의 왕이다. 나의 아버지의 휘는 만(滿)이며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왕이다. 나의 어머니는 향지국공주(香志國公主)이며, 나의 두 형은 실리가라파(悉利伽羅婆)와 실리마니(悉利摩尼)이다. 나의 부모가 동방(東方)의 대위덕신(大威德神)에게 기도하여 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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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색,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 『동문선(東文選)』. 온라인 참조: "서천 제납박타존자 부도명 병서 (西天提納薄陁尊者浮圖銘) (幷序)",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출가수행

8세에 나란타사(那爛陀寺)의 율현(律賢, vinaya-bhadra)에게 출가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을 배운다. 19세에 남인도 길상산(吉祥山)에 가서 보명(普明, samanta-prabhāsa)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아 서천(西天) 제108조(祖)가 되고, 호(號)를 지공(指空, śūnyā-diśya)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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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에 스승에게 가서 나라의 글과 외국의 학문을 배웠으며, 대강 그 대의(大義)만을 깨닫고는 버리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는데 의약(醫藥)의 효력이 없었다.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적자(嫡子)가 중이 되면 임금이 병이 완쾌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물었다. 내가 즉시 응낙하니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여, 나의 아명(兒名)을 불러 말하기를, “누달라치파(婁怛囉哆婆)야 네가 능히 할 수 있느냐.” 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막내아들이라 하여 처음에는 매우 난처하게 여겼으나, 마침내 아쉬움을 참고 중으로 내주기를 원하게 되어서 아버지의 병이 금방 나았다. 8세에 삼의(三衣 비구가 입는 세 가지 옷, 즉 승가리(僧伽梨)ㆍ중의(重衣)ㆍ대의(大衣))를 잦추고, 나란타사(那蘭陁寺)의 강사(講師) 율현(律賢)의 문하에 보내어 머리를 깎고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密多經)》을 배우다가 얻음이 있는 것 같아서 제불(諸佛)과 중생의 허(虛)와 공(空) 두 경계를 물으니 강사가 말하기를,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것이 참 반야(盤若)인 것이다. 남인도(南印度)의 능가국(愣伽國) 길상산(吉祥山) 보명(菩明)에게 가면 심오한 뜻을 궁극히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때 나의 나이는 1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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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색,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 『동문선(東文選)』. 온라인 참조: "서천 제납박타존자 부도명 병서 (西天提納薄陁尊者浮圖銘) (幷序)",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구법유학

사자국(師子國)에 갔다가 북쪽으로 편력하여 서역(西域)을 거쳐 1324년경에 원(元)의 연경(燕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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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獅子國)에는 여래발(如來鉢)과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데, 바리때는 그 한 바리때의 밥을 가지고 1만 명의 중을 능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부처님의 발자국은 때때로 빛을 말한다고 한다. 내가 다 우러러 구경하고 절하였다. 마리야라국(麽哩耶囉國)에서는 범지(梵志)를 신앙하였으므로 나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차라박국(哆囉縛國)에서는 정도(正道)와 사교(邪敎)를 함께 믿고 있었다. 내가 좌석에 기대앉아서 말을 하니 여승 중에 말없이 뜻이 서로 통하는 자가 있었다. 가라나국(迦羅那國)도 또한 외도를 신앙하였다. 그곳 왕이 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중략)...

외로운 몸으로 굶주림이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들 과일을 씹으면서 서번(西蕃)의 국경에 도달하였다. 내가 중국에 교화를 펼 때, 북인도(北印度)의 마가반특달(摩訶班特達)을 서번(西蕃)에서 만나 함께 연경에 도착하였다.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서쪽으로 안서왕(安西王)이 부중(府中)에 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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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색,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 『동문선(東文選)』. 온라인 참조: "서천 제납박타존자 부도명 병서 (西天提納薄陁尊者浮圖銘) (幷序)",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활동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주처(住處)라고 하는 금강산에 예배하고 숭복사(崇福寺)에 머무른다. 1328년에 연복정(延福亭)에서 계(戒)를 설하고, 경기 양주 천보산(天寶山) 자락에 절을 세울 것을 부탁한다. 이후 원(元)으로 돌아가 연경(燕京)에 법원사(法源寺)를 창건하고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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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泰定) 연간에 난수(難水)가에서 천자를 뵙고, 불법을 논하여 천자의 뜻에 맞았다. 관계 관사[有司]에 명하여 해마다 옷과 양식을 주니, 사(師)가 말하기를, “내가 이것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고, 떠나가서 동쪽으로 고구려에 노닐어,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에 참례하였더니, 황제(중국)가 연경(燕京)으로 돌아오기를 재촉하였다. 천력(天曆)의 처음에 조서를 내려, 사랑하는 여러 중들과 더불어 내정(內庭)에서 불법을 강설하게 하고, 천자가 친히 임석하여 설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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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색,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 『동문선(東文選)』. 온라인 참조: "서천 제납박타존자 부도명 병서 (西天提納薄陁尊者浮圖銘) (幷序)",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입적

1362년(지정 22) 귀화방장(貴化方丈)에서 입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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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至正) 22년 겨울에 내시가 오니 사가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너의 임금에게 내가 생일을 지난 뒤에 갈 것이지, 생일 전에 갈 것인지를 아뢰어 보라.” 하였다. 장패향(章佩鄕)이 속히 첩목아(帖木兒)의 회지(回旨)를 부쳐 와서 사에게 한겨울만 조금 더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다. 사가 또 말하기를, “천수사(天壽寺)는 나의 영당(影堂)이다.” 하였다. 이해 12월 20일에 귀화방장(貴化方丈)에서 입적하였다. 귀화방장이란 사가 집을 세우고 사가 명명한 곳이다. 황제의 명령이 있어서 성(省)ㆍ원(院)ㆍ대(臺)의 모든 관사(官司)에서 의식을 갖추고 호위하여 천수사의 감실(龕室)에 안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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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색,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 『동문선(東文選)』. 온라인 참조: "서천 제납박타존자 부도명 병서 (西天提納薄陁尊者浮圖銘) (幷序)",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1372년(공민왕 21)에 그의 사리(舍利) 일부가 고려에 전해 오니, 왕명으로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부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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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해에 어사대부 도견첩목아(圖堅帖木兒)ㆍ평장백(平章伯) 첩목아가 향을 싸 가지고 와서 사의 시체를 배알하고 향과 □를 바른 베[布]와 매화나무와 계수나무와 빙단(氷團)을 사용하여 육신(肉身)을 빚어 상(像)을 만들고, 무신년 가을에 병임성(兵臨城)에서 화장하고 유골을 4분하여 달현(達玄)ㆍ청혜(淸慧)ㆍ법명(法明)과 내정(內正) 장록길(張祿吉)이 각각 가지고 갔다. 그의 무리 달현이 바다를 건너오는데, 사도 달독(司徒達督)은 청혜(淸慧)에게서 얻어가지고 함께 우리 나라로 돌아왔다. □임자년 9월 16일에 왕명으로 회암사(檜巖寺)에 부도를 세우고 장차 탑 안에 넣으려고 유골을 물에 씻다가 사리 몇 개를 찾아내었다. 사가 인도(印度)에서 문수사리(文殊師利)의 《무생계경(無生戒經)》 2권을 가지고 왔다. 참정(參政) 위대박(偉大朴)이 그 첫머리에 서문을 쓰고, 손수 《원각경(圓覺經)》이라고 썼으며, 구양승지(歐陽承旨)가 그 말미에 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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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색,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 『동문선(東文選)』. 온라인 참조: "서천 제납박타존자 부도명 병서 (西天提納薄陁尊者浮圖銘) (幷序)",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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