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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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인조가 반정으로 왕이 되기 전에 머물던 잠저(潛邸)로,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이 태어나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에 머물던 장소이다.[1]
내용
역사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어의궁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인조의 잠저였던 향교동(鄕校洞) 어의궁이고, 다른 하나는 효종의 봉림대군 시절 잠저이면서 즉위 후 본궁(本宮)이 된 ‘어의동(於義洞)’의 어의궁이다. 조선 말기에 인조의 잠저를 ‘상어의궁(上於義宮)’이라 하고, 효종의 잠저를 ‘하어의궁’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이 둘을 상·하어의궁으로 구분하고 있다. 향교동 어의궁은 인조의 어휘(御諱)를 봉안하는 곳으로 기능하였다. 어의동 어의궁은 효종 즉위 후 본궁으로 이름을 바꾸어 1907년 국가의 소유가 되기까지 왕실의 내탕을 조달함과 동시에 가례를 치를 때 임시로 사용하는 별궁의 기능을 했다.[2] 조선시대 가례에 어의궁이 별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인조가 장렬왕후를 왕비로 맞이할 때부터였고, 그 후 관행으로 굳어져 정순왕후도 영조를 맞이할 채비를 갖춘 곳이다.[3]
현재
1907년(융희 1) 궁내부령(宮內府令)에 의하여 궁의 업무를 담당하던 도장을 폐지하고 제실 재산 정리국 관제(帝室財産整理局官制)에 의하여 모든 재산이 제실관리국으로 넘어갔다. 현재 어의궁은 존재하지 않고 어의궁이 있던 자리에 비석만 남아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친영 | 어의궁(於義宮) | A는 B에서 거행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635년 12월 3일 | 인조와 장렬왕후의 친영을 어의궁에서 행하였다 |
1680년 5월 13일 | 숙종과 인현왕후의 친영을 어의궁에서 행하였다 |
1757년 6월 22일 | 영조와 정순왕후의 친영을 어의궁에서 행하였다 |
1651년 12월 22일 | 인조와 장렬왕후의 친영을 어의궁에서 행하였다 |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의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164쪽.
- ↑ 한국학진흥사업단 어의궁
-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의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164쪽.
- ↑ 한국학진흥사업단 어의궁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의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주남철, 『궁집』, 일지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