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밀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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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 밀수사건(─密輸事件)
김재현, "한국비료(韓肥) 사카린 밀수사건", 『네이버 블로그 - 따뜻한 고향』online, 작성일: 2016년 08월 21일.
대표명칭 사카린 밀수사건
한자표기 ─密輸事件
시대 현대
날짜 1966년 9월
관련인물 이병철,박정희
관련단체 한국비료공업



정의

1966년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을 밀수하여 부당이득을 취하였다가 발각된 사건.

내용

여당 국회의원의 언론제보로 삼성이 밀수품을 팔아 거액을 챙기고 있다는 게 사실이 폭로됐다. 이를 두고 '밀수 자체가 박정희 정권과 삼성의 밀약이었는데 정권이 뒤통수를 쳤다'는 주장(장남 이맹희)에서부터 "이병철의 삼성 재벌의 계획적인 밀수"(김형욱)라는 비난, "현장담당 사원의 부주의로 발생"(이병철)한 것이라는 해명까지 나왔다.

어쨌든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요구대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했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권위주의 시대 권력과 재벌은 서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까, "파란많던 생애에서도 더할나위 없는 쓰디쓴 체험"을 했다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밀수범'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이후 이 전 회장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언론사 소유 지분도 내다판다고 약속했으나, 70년대 후반 경영에 복귀했고 <중앙일보>를 창간 했으며 1983년에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1966년 5월 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상업차관 4천여만달러까지 들여왔다. 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씨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이병철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 씨)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레스 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사카린 밀수사건 정약용 A는 B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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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2017년 3월 20일-6월 10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사카린 밀수사건를 개최하였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인용 및 참조

  1. 웹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