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복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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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백복지무 (演百福之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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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연백복지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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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演百福之舞 |
유형 | 예술·체육/무용 |
정의
조선시대 순조 때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1]
내용
당악정재의 한 형식인 죽간자(竹竿子) 구호(口號)와 치어(致語)를 가진다. 창사(唱詞)는 순조 기축년(1829) 예제(睿製)와 고종 정해년(1887)에 개제(改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춤은 선모(仙母) 1인, 협무(挾舞) 4인으로 구성된다.[2]
구성
춤의 짜임새는 대개 사우무(四隅舞)·오방무(五方舞)·회선무(回旋舞)·부열무(復列舞)·사우무(四隅舞)·대수무(擡袖舞)·번수무(飜袖舞)의 순서로 춤춘다. 개장(開場)과 수장(收場)에는 <보허자령 步虛子令>의 음악을 쓰고, 중간은 거의 <향당교주 鄕唐交奏>로 일관한다. 구호·치어·창사를 합하여 열 번이나 노래가 있어 비교적 노래가 많은 춤이다. 이 중 선모와 협무가 부르는 창사의 전단은 <보허자령> 초장에, 후단은 <보허자령> 2장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데, 이를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라고 한다.[3]
복장
순조 기축년의 ≪진찬의궤(進饌儀軌)≫에 의하면 무동(舞童)의 복식은 원무(元舞)는 각건(角巾)을 쓰고, 홍포(紅袍)와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에 남야대(藍也帶)를 띠고, 흑화(黑靴)를 신는다. 선모와 죽간자는 복두(幞頭)를 쓰고, 남포(藍袍)와 백질흑선중단의에 홍야대(紅也帶)를 띠고 흑화를 신는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舞譜)로는 ≪궁중정재무도홀기(宮中呈才舞圖笏記)≫가 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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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백복지무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당악정재 | 연백복지무 | A는 B를 포함한다 | |
궁중정재무도홀기 | 연백복지무 | A는 B를 언급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장사훈,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장사훈,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장사훈,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장사훈,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사료
- 『진찬의궤(進饌儀軌)』
- 『정재무도홀기(呈才無圖笏記)』
- 『국연정재창사초록(國讌呈才唱詞抄錄)』
- 저서
- 장사훈,『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7.
더 읽을거리
- 저서
-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10
- 송방송, 「韓國近代音樂史硏究」, 민속원, 2003
- 논문
- 박승희, 「순조대 무동의 궁중정재 연구」, 한국체육대학교, 생활무용 석사학위논문, 2017
- 이견주, 「한국 전통 무용에 따른 장단분석 연구」, 목원대학교 산업정보대학원, 스포츠과학과 석사학위논문, 2011.
- 한지영, 「孝明世子 代聽時 創作 呈才 硏究」, 한양대학교 대학원, 생활무용예술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 정효민,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예술전문사 학위논문, 2008.
- 최경자, 「陰陽五行思想에 영향받은 朝鮮後期 呈才의 硏究 : 催花舞·長生寶宴之舞·演百福之舞 中心으로」,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무용교육전공 석사학위논문,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