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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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21일 (월) 13: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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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朴聖源)
대표명칭 박성원
한자표기 朴聖源
생몰년 1697-1767
본관 밀양(密陽)
호 겸재(謙齋)
자 사수(士洙)
대표저서 보민록, 겸재집
대표직함 지평, 세손강서원유선
유형 문신


정의

박성원(1697∼1767)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내용

생애 및 관직활동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수(士洙), 호는 겸재(謙齋).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1년(경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728년(영조 4) 별시문과의 을과에 급제, 사간원정자(司諫院正字)·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역임하였다. 1744년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영조가 기로소(耆老所: 70세이상 문관 정이품이상의 노인 우대소)에 들어감을 반대하다가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의 배소에 가시울타리를 쳐 그 안에 가두어 둠) 되었다가 2년 뒤 석방되었다. 세손강서원유선(世孫講書院諭善)이 되어 세손인 정조를 보도(輔導)하였으며, 참판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

학술활동 및 저서

학술활동

그는 효가 화민성속(化民成俗)의 근본이 되는 점을 들어 백성들을 보호하고 국기를 다지는 원동력이 됨을 정책적인 차원에서 실시해보려는 의도를 그의 저술들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그의 심성론은 스승인 이간(李柬)의 학설을 지지함으로써 한원진(韓元震) 등의 호론(湖論)을 반박하고 낙론(洛論)에 동조하였다.[2]

저서

박성원은 예서(禮書)의 연구에 적극적인 힘을 기울여 연구과정에서 의혹된 점을 일일이 초출하여 조목마다 그의 사견을 첨부하여 『예의유집(禮疑類輯)』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후학들의 예서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밖에도『돈효록(敦孝錄)』·『보민록(保民錄)』·『돈녕록(敦寧錄)』·『겸재집(謙齋集)』 등의 저서가 있다.[3]

영조 23년(1747)에 지은 것인데, 정조 11년(1787) 책머리에 정조가 정음통석서(正音通釋序)를 써서 간행시켰기 때문에 『정음통석(正音通釋)』이라고도 한다. 그밖에 이본이 몇 종류가 있다. 『삼운통고(三韻通考)』와 『사성통해(四聲通解)』에 의거하여 당시의 우리 나라와 중국의 한자음을 밝힌 운서다. 중국어 역관인 이언용(李彦容)이 많이 도왔다고 한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성원 화동정음통석운고 A는 B를 저술하였다
화동정음통석운고 사성통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화동정음통석운고 언문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 이순두, "박성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 이순두, "박성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 이소영, "충북대학교 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 이응백 외,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네이버 참조: "박성원",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김윤정, 「謙齋 朴聖源의 禮學과 『禮疑類輯』의 성격」, 『韓國文化』Vol.61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3.분루: 인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