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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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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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for Buddhist Monk Nangwon at Bohyeonsa Temple, Gangneung |
한자 | 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碑 |
이칭 | 보현사 낭원대사오진탑비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542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192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찬자 | 최언위(崔彦僞) |
서자 | 구족달(仇足達) |
각자 | 임문윤(任文尹) |
서체 | 해서(楷書) |
승려 | 개청(開淸) |
건립연대 | 940년 |
승탑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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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사(普賢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려 낭원대사 개청(朗圓大師 開淸, 835-930)의 탑비.
내용
개요
보현사(普賢寺)에 있는 신라말 고려초의 선사 낭원대사 개청[朗圓大師 開淸, 835(흥덕왕 10)∼930(경순왕 4)]의 비. 고려초의 문인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구족달(仇足達)이 해서로 써서 임문윤(任文尹)이 새겨서 대사가 입적한 10년 후인 940년(태조 23)에 세웠다. 신라말 구산선문 중의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승려로 통효범일(通曉梵日)의 법을 이은 대사의 가계와 탄생, 출가와 수행, 교화와 입적에 이르는 생애를 차례로 기술하였다. 화엄종에서 출가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사에서 범일의 제자가 되어 선사가 되고 지방세력의 지원으로 새로 보현사를 개창하고 한편으로는 경애왕으로부터 국사로 대우받은 신라말 선승의 활동상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음기에는 원주승·전좌승·도유나·사승(史僧) 등 사직(寺職) 승려와 명주지방의 도령(都領)·집사낭중(執事郎中)·원외(員外)·색집사(色執事) 등의 지방 세력을 들고 있어 신라말 고려초 지방 세력 동향을 파악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금석문
보물 제192호. 비신 높이 188㎝, 너비 98㎝, 두께 20㎝. 통일신라 말 사굴산문의 선승인 낭원대사(朗圓大師)의 탑비로, 940년(태조 23)에 건립되었다. 이 탑비가 있는 보현사는 통일신라 때 지장선원(地藏禪院)이었다. 낭원대사가 96세로 입적하자 왕은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 비는 대사가 입적한 10년 뒤에 세워졌는데, 비의 원명은 ‘고려국명주보현산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출생에서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려 국사로 예우한 사실 및 입적하기까지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명서예가인 구족달(仇足達)이 썼다. 글씨는 2㎝ 정도의 해서로 필세가 웅경하고 예리하여 금석기(金石氣)가 넘친다.-민백
비문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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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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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A는 B에 있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A는 B의 이름을 지었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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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A는 B가 비문을 새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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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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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