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휘
정의
조선 후기의 승려로, 자는 중부(仲孚),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보통 초의선사라고 불린다.
전라남도 무안 출신으로, 대흥사(大興寺) 제13대 종사이며 다도(茶道)의 정립자이다. 그래서 초의를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내용
1786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출생하였으며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는 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6세에 나주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의 제자가 되었으며 승려가 되었다.
22세 때부터 전국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가 삼장(三藏)을 배우고 유학·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으며,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그는 정약용(丁若鏞), 홍현주(洪顯周), 김정희(金正喜), 신위(申緯)등과 교유하였는데, 초의는 정약용에게서 유학(儒學)과 시문(詩文)뿐 아니라, 제다법을 배웠고, 스승의 명에따라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렸는데, 정약용은 초의의 그림과 자신의 친필 시를 합첩하여 『백운첩(白雲帖)』을 남겼다.
초의는 수행생활과 함께 차(茶)에 대한 조예가 깊었는데, 차서(茶書)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여 차를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초의는 다도에 대하여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고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1]
또한 그는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하였는데, 다신전은 찻잎따기, 차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평범한 일생을 통하여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수도하고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을 닦고,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시각자료
사진
의순의 영정[2]
영상
- [MBC] 다성 초의선사를 찾아서(게시일: 2016년 5월)
mbc프라임 불탄일 특집_다성 초의선사를 찾아서 from Youngin Koo on Vimeo.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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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의순 | A는 B의 스승이다 | |
의순 | 백운동도 | A는 B를 그렸다 | 1812년 |
의순 | 다산도 | A는 B를 그렸다 | 1812년 |
의순 | 다신전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828년 |
의순 | 동다송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의순 | 다선삼매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의순 | 설록다원강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12년 | 이덕휘이 백운동도를 그렸다 |
1812년 | 이덕휘이 다산도를 그렸다 |
1828년 | 이덕휘이 다신전을 저술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4.7406953 | 126.7047464 | 설록다원강진은 이덕휘과 관련이 있다 |
참고문헌
- "의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 - "의순",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 - "다도",
『차생활문화대전』online , 네이버 지식백과.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 - "초의선사",
『차생활문화대전』online , 네이버 지식백과.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 - 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