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박창돈-안시성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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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i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17일 (월) 22:46 판 (시각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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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싸움
박창돈-안시성싸움(양만춘)-1975s.jpg
작가 이종상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전쟁
분류 유화
소장처 독립기념관



개요

645년 양만춘[1]안시성에서 고구려군을 포위 공격하는 당나라 군대를 격퇴하는 장면을 그린 민족기록화이다.

설명

작품 소재

당나라는 안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당대 가장 강력한 공성 무기였던 포거[2]충거[3]를 동원하는 한편 성벽보다 높은 토산(土山)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토산이 무너지면서 성벽의 한쪽 귀퉁이가 함께 부서졌고, 고구려군은 이 무너진 성벽 틈으로 빠져 나와 역으로 토산을 점령하여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림 왼편에 포거충거를 확인할 수 있고, 오른편에 성벽의 무너진 틈새에서 청룡기를 나부끼며 쏟아져 나오는 고구려군을 볼 수 있다. 실제 전투의 흐름 상 그림의 모든 상황이 같은 시간대에 이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사료에 입각하여 안시성 전투의 전개, 진행상 특이점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작품이다.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인 안시성의 소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사(金史)』지리지에 따라 만주 개평(蓋平) 동북의 탕지보(湯池堡)에 비정하고, 『이계집(耳溪集)』이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는 만주의 봉황성(鳳凰城)에 비정하며, 현재는 만주 봉천성(奉天省) 해성(海城)의 동남쪽에 있는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시각적 안내

양만춘안시성박창돈-안시성싸움(양만춘)-1975s.jpg
이 그림에 대한 정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창돈 박창돈-안시성싸움 A는 B를 그렸다 1975년
독립기념관 박창돈-안시성싸움 A는 B를 소장하고 있다
박창돈-안시성싸움 안시성전투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박창돈-안시성싸움 양만춘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박창돈-안시성싸움 안시성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양만춘 안시성전투 A는 B를 지휘하였다 645년
안시성전투 포거 A는 B를 사용하였다
안시성전투 충거 A는 B를 사용하였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5년 박창돈이 박창돈-안시성싸움를 제작하였다.
1992년 1월 31일-1992년 1월 30일 독립기념관이 박창돈-안시성싸움를 대여하였다.
645년 안시성에서 안시성전투가 발발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6.7835383 127.2210151 박창돈-안시성싸움이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래프

참고문헌

  • "안시성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7일.
  • "안시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7일.

주석

  1.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수의 이름이 『삼국사기』 등의 안시성전투에 관한 기본사료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래의 야사에는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滿春)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2. 抛車, 큰 돌을 날려 보내는 투석기
  3. 衝車, 성벽을 파괴하는 돌격용 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