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우-행주대첩
오승우-행주대첩 | |
작가 | 오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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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5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군사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독립기념관 |
설명
권율(權慄)이 1만여의 병사로 행주산성을 포위 공격해 오는 왜군을 격퇴하는 장면.
권율은 1592년 7월(선조 25) 배티 싸움에서 대승한 공로로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가 된 후 호남의 병력을 이끌고 전주·공주·천안·오산을 거처 독산성(禿山城)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평양을 수복하고 남하하는 명나라 원군과 호응하여 한양을 되찾기 위하여 북상하였다. 권율은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에게 명하여 병력을 주둔할 곳을 물색하던 중 최종 주둔지를 왜군의 본진이 자리한 한양에서 불과 20여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행주산성에 목책을 설치하고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에 왜군은 총대장 우키타(宇喜多秀家)를 선두로 7개의 부대 3만여명의 병력으로 행주산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왜장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이 군사를 이끌고 성의 서북쪽을 공격해 승군 진영을 뚫고 내성까지 돌입하려고 하자 승병들이 크게 동요하였으나, 권율이 대검을 빼어들고 싸움을 독려하니 승병들이 심기일전하여 왜병과 아군사이에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림의 아래 중앙에는 머리에 커다란 돌을 맞은 왜병이 핏자욱이 낭자한 채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고, 돌에 얼굴을 맞은 다른 왜병은 왼손에 긴창을 든채 얼굴울 감싸쥐고 괴로워하고 있다. 성 아래에서 산성을 행해 진격하고 있는 왜병의 모습과 곳곳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투석전을 벌이고 있는 승복을 입은 승병들 뒤로 백마를 타고 긴검을 빼어 들고 싸움을 독려하는 장수(권율로 추정)의 모습이 보인다. 무너진 목책,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전투의 비장함과 처철함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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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노드 | 관계 | 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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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 | 오승우-행주대첩 | A는 B를 그렸다 |
오승우-행주대첩 | 독립기념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오승우-행주대첩 | 행주산성 |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오승우-행주대첩 | 행주대첩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권율 | 행주대첩 | A는 B에 참가하였다 |
처영 | 행주대첩 | A는 B에 참가하였다 |
조경 | 행주대첩 | A는 B에 참가하였다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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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행주대첩 | 제작연도 | 1975년 |
수도군단사령부 | 소장처 | 1979년 |
독립기념관 | 소장처 (임대) | 1991년 |
독립기념관 | 소장처 | 2017년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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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행주대첩 | 작품배경 | 행주산성 | 37.600465 | 126.824704 |
오승우-행주대첩 | 現 소장처 | 독립기념관 | 36.7835383 | 127.2210151 |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의원동우회, 『민족기록화, 전승편』,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