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구황촬요
신간구황촬요 | |
한자명칭 | 新刊救荒撮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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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 book about dealing with famine |
작자 | 신속 |
작성시기 | 1660년(현종1)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C6A-10B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8.9×19.7㎝ |
판본 | 목판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개요
청주 현감으로 있던 신속申洬, 1600~1661이 엮은 기근饑饉 구제에 관한 책
텍스트
청주 현감으로 있던 신속申洬, 1600~1661이 엮은 기근饑饉 구제에 관한 책이다. 1554년명종9에 간행된 『구황촬요』 가운데 언해 부분을 약간 수정한 뒤, 신속이 언해·편찬한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을 합철하였다. 책의 서두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지은 서문이 있고, 이어서 신속이 찬술한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1554년에 이루어진 『구황촬요』가 있으며, 맨 끝에 신속의 발문이 있다. 신속의 발문에 의하면, 세종 때 나온 『구황벽곡방救荒辟穀方』 중에서 중요한 것을 뽑아 명종 때 이를 언해하여 간행했으나 그 책이 드물어 인조 때 김육金堉, 1580~1658이 중수하여 간행하였다. 하지만 이 책도 산일散逸되어 찾아보기 어렵게 되자 『신간구황촬요』 간행에 착수한 것이다. 언해는 한문 원문 전체를 번역하는 대신, 실용적이고 요긴한 내용을 간추려 번역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효종 말년부터 현종 즉위 연간에 이르기까지 흉년이 이어져 굶어 죽는 자가 속출했는데, 이 책에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초근목피草根木皮 등의 다양한 대용 식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지배층이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1]
부연설명
1권 1책. 목판본. 1554년(명종 9)에 간행된 『구황촬요』 중 언해 부분을 약간 수정한 것에다 신속이 언해, 편찬한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을 합철하였다. 내용은 송시열(宋時烈)의 서문, 『구황보유방』, 그리고 이택(李澤)의 서문이 있는 1554년의 『구황촬요』가 있고, 맨 끝에 신속의 발문이 있다. 필사본 『구황촬요』(1584년 해주본)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신간구황촬요』는 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학교 가람문고와 일사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다. 또 이본(異本)으로 1686년(숙종 12) 무성(武城 :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에서 전이채(田以采)·박치유(朴致維)가 간행한 목판본이 있다. 내용은 앞의 책들과 같으나 판식(版式)과 장수가 다르다. 『신간구황촬요』는 비록 그 분량이 적으나 17세기 국어자료의 가치를 가진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을 중심으로 어학적인 특징을 몇 가지 보면 다음과 같다. 어두자음군은 ㅅ계와 ㅂ계가 쓰여 ㅺ·ㅼ·○·ㅆ·○·ㅳ·ㅄ·ㅶ 등이 보이며, 어간말음 ㅺ과 ㄲ의 용례들이 있고, 구개음화와 원순모음화는 약간 나타날 뿐이다. 라기(芒), 모밀느정이(木麥花), 즉긔여(碎) 등의 특수한 어휘들이 많다. [2]
시각자료
관련항목
중심 | 연결정보 |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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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구황촬요 | 인물 | 신속 |
신간구황촬요 | 개념 | 구황촬요 |
신간구황촬요 | 개념 | 구황보유방 |
신간구황촬요 | 인물 | 송시열 |
신간구황촬요 | 개념 | 구황벽곡방 |
신간구황촬요 | 인물 | 김육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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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구황촬요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37.39197 | 127.054387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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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구황촬요 | 간행년 | 1660년(현종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