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효공원
사가효공원(四佳亭公園)
2005년 4월 13일 개장한 사가정공원은 면목동 면목약수터지구 입구에 약 3만 3천 2백여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공원의 명칭은 용마산 부근에서 거주했던 조선 전기의 문인인 서거정 선생의 정취를 느낄수 있도록 그의 호를 따서 지어졌다. 또한, 그의 대표적인 시 4편을 골라 시비를 만들어 설치함으로써 공원이용객들이 산책과 함께 명시를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 피크닉장, 어린이 놀이시설, 체력단련시설, 건강지압로, 사가정(전통 정자), 다목적광장 등 다양한 휴게시설과 운동시설, 조경시설이 갖춰져 있다.
사가정공원은 2003년 12월 공원조성 공사에 착공하여 2005년 4월 13일 개장하였다. 전체 면적 10만 9,635㎡(3만 3천 2백여 평)에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였던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정(四佳亭)’이란 호를 따서 지은 공원이다.
그의 호 ‘사가정(四佳亭)’에서 ‘사가(四佳)’는 ‘네 가지의 아름다움’ 혹은 ‘네 가지를 좋아함’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네 가지는 서거정이 좋아했던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를 가리킨다.
그는 집안에 이 네 가지 꽃과 식물을 심어놓고 즐겨 감상하면서 자신의 호를 ‘사가정(四佳亭)’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친구였던 박팽년의 ‘강중(剛中)의 집안에 심어진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 네 가지를 소재로 읊다(題剛中家梅竹蓮海棠四詠)’라는 시(詩)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서거정(徐居正, 호 四佳亭)이 용마산 자락에 정자 ‘사가정’을 짓고 살았다고 하여 그런 연유로 1984년도에 도로명을 정비하면서 당초에 면목로라 불렀던 길을 그의 호를 따서 사가정로라고 고쳐 불렀고, 그 뒤에 생긴 역 이름도 사가정이라고 했다.
한명회의 호에서 따 온 압구정역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가정은 당시 파주 도라산에 있던 정자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 재치있게 빌린 것이란다. 조선조의 대표적인 관료였으니 당연히 본가는 도성 내에 있었을 것이고 당시엔 궁벽한 산촌이었을 이곳에는 아마 한양 근교에 여러 채 있었다는 그의 별장 중의 한 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거정(1420∼148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강중(剛中)·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서거정은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선생은 김시습과 쌍벽을 이룬 당대의 대문호였지만, 생육신인 김시습과는 달리 계유정난 때 세조의 편에 서게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 고위관료였다.
6살 때부터 글을 지었다는 천재 사가정 선생은 시를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 일만 수가 넘는 한시를 지었다는 독백을 ‘졸고 후에 쓰는 글'(書拙稿後)에서 토로했다고 하니 선생의 생활은 그 자체가 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뛰어난 문학 저술을 남겨 조선 시대 관인 문학이 절정을 이루었던 목릉성세(穆陵盛世)의 디딤돌을 이루었다. 〈경국대전〉·〈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언해했다.
그의 저술서로는 객관적 비평태도와 주체적 비평안(批評眼)을 확립하여 후대의 시화(詩話)에 큰 영향을 끼친 〈동인시화〉, 간추린 역사·제도·풍속 등을 서술한 〈필원잡기 筆苑雜記〉, 설화·수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이 있으며, 관인의 부려호방(富麗豪放)한 시문이 다수 실린 〈사가집 四佳集〉 등이 있다.
명나라 사신 기순(祁順)과의 시 대결에서 우수한 재능을 보였으며, 그를 통한 〈황화집 皇華集〉의 편찬으로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그의 글씨는 충주의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에 남아 있다. 시호는 문충이며, 대구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 되었다.<참고 : 다음 백과사전>
중랑구 면목동 사가정공원엔 조선조 문인 [[서거정]₩(1420~88)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시비들이 띄엄띄엄 세워져 운치를 더해준다.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산책길에서 산책과 함께 글 향기가 물씬 풍기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명시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등산객이나 면목동 주민은 얼마나 행복한가?
'사가정' 공원 입구에 '한중(閑中)' 이 새겨져 있다. 공원의 초입에 ‘한가로움 속에서(閑中)’란 제목의 조선 시대 대학자 '서거정'의 시를 새긴 시비가 내 눈길을 끌어당긴다. 초가을의 햇빛이 시비에 눈부시게 반사되니 바위에 새겨진 글자 한 자 한 자가 모두 살아 꿈틀대는 것 같다.
白髮紅塵閱世間 백발홍진열세간
世間何樂得如閑 세간하락득여한
閑吟閑酌仍閑步 한음한작잉한보
閑坐閑眠閑愛山 한좌한면한애산
홍진에 백발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살이에 그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 같으랴.
한가히 시 읊고 한가히 술잔 들며 한가히 산보하고
한가히 앉아 쉬고 한가히 잠들고 한가히 산을 즐김에야.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옛 선비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년 은퇴한 후에 한가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나의 요즘 생활과 너무 흡사한 것을 발견하고 웃음 짓게 된다. 권모술수로 얼룩진 조정의 생활 속에서도 학문과 문학을 즐기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리라. 서거정은 그렇게 살았다.
공원을 걷다 보니 또 하나의 시비가 눈에 띤다. 이 시비는 선비들이 사용하는 붓통에 몇 개의 붓이 꽃혀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계단 아래 쪽에 오후 햇볕을 등지고 서 있어서 글자가 선명하지 못했다.
金入垂楊玉謝梅 금입수양옥사매
小池春水碧於苔 소지춘수벽어태
春愁春興誰深淺 춘수춘흥수심천
燕子不來花未開 연자불래화미개
금은 수양에 들고 옥은 매화에서 떠나는데
작은 못의 봄물이 이끼보다 파랗구나.
봄의 수심과 흥취는 어느 것이 더 깊고 얕은가?
제비는 아직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네.
이 시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의 ‘春日(춘일)’로서 봄에 나타나는 다양한 색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노란 수양버들 꽃을 보고 그 속으로 금빛이 들어간 것으로 보고, 시드는 하얀 매화를 보고 옥빛이 떠나가는 것으로 파악한 발상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작은 못에 고인 봄물이 이끼보다 파랗다고 한 것은 봄기운이 대지를 뒤덮는 시절에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끼보다 더 파랗게 보이는 봄물이라고 하였으니 그 빛깔의 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봄의 색깔이라면 파란색이거나 녹색이 아닐까 싶다. 다음 ‘독좌(獨坐)’라는 제목의 시를 보자.
獨坐無來客 독좌무래객
空庭雨氣昏 공정우기혼
魚搖荷葉動 어요하엽동
鵲踏樹梢飜 작답수초번
琴潤絃猶響 금윤현유향
爐寒火尙存 로한화상존
泥途妨出入 니도방출입
終日可關門 종일가관문
찾는 손 없이 홀로 앉아 있으니
빈 뜰엔 빗 기운이 어둑어둑
물고기가 흔들어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앉아 나무 끝이 너풀거리네
거문고에 습기가 끼었으니 오히려 잘 울리고
화로는 차가우나 불씨는 아직 남았네
진흙 길이 출입을 방해하니
온종일 문을 닫아두어도 괜찮으리
이 시는 제목이 ‘홀로 앉아’(獨坐)로 되어 있는 시이다. 사람이 때로는 혼자 있어 보아야 한다. 혼자 있을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만물을 정관(靜觀) 하며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다. 출입을 가로막는 진흙 길이 상징하듯 불우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문을 닫아걸고 칩거하는 작가의 고독한 모습을 그린 한시이다.
은거하는 고독과 시절을 견디는 오롯한(남고 처짐이 없음) 몸가짐이 잘 드러나 있다. 전체적으로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여전히 소리가 나는 거문고와 불씨가 남아 있는 화로라는 상징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다시금 강조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 한 편의 ‘睡記(수기}’를 감상해 보자.
簾影深深轉 염영심심전
荷香續續來 하향속속래
夢回孤枕上 몽회고침상
桐葉雨聲催 동엽우성최
주렴의 그림자 방안 깊숙이 드리우고
연꽃 향기 연이어 방안으로 들어오네
홀로 낮잠을 자다 꿈에서 깨니
오동잎에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睡起’(잠에서 깨어나)라는 시다. 집안은 텅 비어 있고 낮잠을 즐기다가 소나기가 후두두 오동잎을 때리는 소리에 잠을 깬 순간의 포착이 산뜻하다. 잠깐 낮잠에 빠졌다가 빗소리에 깨어난 시인의 모습이 몽롱한 여름 정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