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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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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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족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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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簇頭伊, 簇頭里, 족두(足頭), 족관(簇冠), 죡도리 |
착용신분 | 왕실, 궁중, 반가 |
착용성별 | 여성 |
정의
조선후기의 여성 예관.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기본 정보
=어원-
- 국문학계: 알타이어 계통의 순수 우리말인 족+두리의 합성어.
유래
-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하사한 ‘고고리’가 와전되어 ‘족두리’가 변했다고 보는 견해.[1]
- 조선시대 학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6): 원나라 사람들이 말이 죽으면 불쌍하게 여겨 그 말굽 모양을 취해 머리에 쓰는 족두(足兜)의 남겨진 형상에서 유래했다는 보는 견해.[2]
시대별 형태 변화
- 조선 전기(14~16세기)[3]
- 앞이 낮고 뒤가 높으며, 옆면이 6~7쪽으로 나뉘고 정수리는 원형의 천 조각을 넓게 대어 편평함.
조반 부인[4]
- '17세기’[5]
- 문헌에 ‘족두리’ 명칭 처음 등장.
- 옆면이 7개의 조각으로 구성, 둥근 정수리가 앞으로 기울어짐.
- 윗면이 85~95cm, 밑면이 61~69.5cm로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는 모양.
- 조선 전기처럼 머리 위에 완전히 쓸 수 있는 형태로 역대 시기별 가장 큼.
- '18세기 이후’[6]
- 17세기에 비해 둘레가 확실이 줄어들었지만, 가장 우뚝 솟은 형태.
- 17세기는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졌다면 18세기는 중심이 뒤쪽으로 이동.
- 크기가 전체적으로 이전 시기에 비해 줄어들면서 정수리의 원도 줄어들어 복숭아 씨 모양의 형태.
- 조선시대에 가체금지령으로 인해 족두리가 권장된 이후, 현재까지도 혼례시에 사용.
관련항목
참고문헌
주석
- ↑ 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服食類, ‘東國婦女首飾辨證說’, “高麗史元賜王妃古古里, 卽冠名傳於世, 則今簇頭里, 無乃古古里之音近而訛者歟.”
- ↑ 朴珪壽, 居家雜服攷, 內服, “按, 所謂娘子頭者, 旣在腦後, 則頂上空處, 乃有小戴, 非冠非帽, 正如脫取馬蹄而仰置之形, 俗名足兜, 未知創自何時, 或云, 亦是元俗也. 胡人本以鞍馬爲家馳逐爲生, 故馬死則憐之, 取其制而戴之, 足兜之形, 卽其遺象, 故因名足兜也.”
- ↑ 金知娟(2008)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pp. 102~104.
-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 金知娟(2008)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pp. 104~106.
- ↑ 金知娟(2008)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pp. 107~111.
-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