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15일 (수) 15:45 판
정의
신라시대의 승려
생애
가계와 탄생
수철(秀澈)은 815년 출생하였다. 집안은 ..........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우고자 하는 뜻이 뚜렷했다.
|
德은 仙人이라 부를 만하니 증조부는 위계가 소판으로 집안이 眞骨로 빼어나서 경사가 후손에까지 미쳤다. 조부는 日新이고 부친은 修靜인데 벼슬하고자 하지 않아 대대로 좋은 법도를 전하여 집안을 온전히 하고 세상을 피하여 보전하고자 하는 맑은 뜻이 있었다. …… 도의 경지로 들어오기를 잘 하셨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허망한 꿈과 같음을 문득 깨달아 잠깐 눈먼 거북이 佛法 만나기 어려운 인연을 듣고, 불법을 보고는 지체하지 않으셨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출가수행
수철은 연허율사에게 출가하고, 천종대덕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동원경 복원사에서 윤법대덕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
나이 십오세 남짓에 불법을 배우고자 뜻을 두어 緣虛율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天宗대덕에게서 경전을 배우셨다. 얼마 있다가 …… 東原京 福泉寺에 가서 潤法대덕에게서 具足戒를 받으셨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활동
수철은 실상사에서 홍척(洪陟)의 제자가 되었다.
|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녀 雪岳에도 들르고 雲峰에도 발을 옮겨 實相寺에 이르셨다. 스승이 원하던 바와 들어맞아 대사가 제자되기를 청하니 하락하셨다. 이에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하고 물으니 “스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하고 대답하셨다. 이미 신묘한 경지에 들어 …… 國師가 이르기를 “도를 붙이는 것은 오랜 인연으로 말미암은 바라. 西堂의 가풍을 잘 짓는 일은 (너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라고 하셨다. 이때 …… 스승이 부름에 응하여 거동하여 서울에 가시니 (왕이) 배례하였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수철은 명산 승지를 순례하였다.
|
이미 이치를 풀어냈으니 거처에 걸림이 있겠는가. 이로부터 名山 勝地의 탑에 예배하러 돌아다니시니 …… 參禪에서 꽃술을 드날리고 華嚴에서 향기를 모으셨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수철은 지리산 지실사를 창건하고 가르침을 펼쳤다.
|
마침내 다시 곧바로 가서 知異山 知實寺를 홀로 쌓으시고 여러 章疏를 남김없이 보시니 이는 나면서부터 뜻을 아는 이로서 날로 부처님이 천명한 가르침을 높여가신 것이다. 그 힘은 중생을 교화하는데 돌리시고 부처를 이롭게 하므로, 고요하게 무리를 이끄시니 말없이 절로 알려져 正法大德인 弘□와 前 □州 僧正인 順□, 宗子선사 등이 제자가 되어 모두 마음을 닦았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수철은 서울에 가서 팔각당에서 경문왕의 교와 선의 같고 다름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였다.
|
咸通 □년에 太師를 추증받은 景文大王께서 산에 있는데 부르시니 걸음을 옮겨 급히 뜻을 좇으셨다. 하루는 八角堂에서 敎와 禪의 같고 다름을 물으매 “깊은 궁궐에는 절로 천개나 되는 迷路가 있어……끝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이에 …… 禪을 펼쳐 그림과 같이 단계지어 설명하시니 왕이 마음 깊이 기뻐하며 깨달으셨다. 이에 앞선 구름이 돌아가 넘어 길이 동굴에서 따라 나오듯 서로 만나보고 나서 (법호를) 더해 주셨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수철은 헌강왕과도 교유했던 것이 확인된다.
|
太傅를 추증받은 憲康大王께서 왕위를 이어 자주 서신을 보내시므로 거동을 옮겨 …….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수철은 혜위법사와 천○법대덕 등의 승려들과 교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
국사는 양념이나 비린 것을 멀리 하고 아픔을 없애며 방편을 잊어버리고자 하셨다. 이때 前國統인 惠威대법사와 泉□法대덕과 비구…… 愼孚가 지해와 실행이 모두 뛰어나 승속이 함께 따라 마음씀이 없이 이치에 들어맞음을 알고는 만나 …… 왕족들도 스승으로 모시고 줄을 지어 하례하니 예의는 멀리 …… 이 없고 도는 더욱 높아졌다.
|
|
출처: 정병삼, "심원사 수철화상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3책,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