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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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전적 서희려(徐希呂)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공망(公望)이다.
부친은 서준호(徐俊豪)이다.
1552년(명종 7) 식년시에서 을과 6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60년(명종 15) 9월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재직 중, 세자가 타고난 바탕이 영리하고 성숙하여 성균관에 입학하는 예에 환관의 도움에 의지할 것이 없다고 상소하였다. 대간(臺諫)과 유학이 모두 세자의 성균관 입학에 환관이 함께 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상소하자 명종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보덕(輔德)과 필선(弼善)으로 세자의 예식을 돕게 하는 한편, 국가의 정사를 대간이 논하는 것은 옳으나 성균관 당상도 아닌 자가 함부로 논하여 불경을 범하였다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강사상(姜士尙)과 영경연사(領經筵事) 상진(尙震) 등이 서희려(徐希呂)의 상언이 성균관의 관원으로서 잘못 거행되는 폐단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개진된 것이라며, 신하의 언로를 열어줄 것을 명종에게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