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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화) 21:1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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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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튱쳥도(忠淸道) 부여현거(夫餘縣居) 고녕부ᄉᆞ(考領府事) 신(臣) 니이명(李頤命) 쳐(妻) 김시(金氏) | 충청도 부여현에 거주하는 고 영부사 이이명의 처 김씨 |
우샹언(右上言)의 단(段)은 녀의신이 부ᄌᆡ(父子) ᄉᆞ이예 용납디 못ᄒᆞᆯ 죄ᄅᆞᆯ 지ᄋᆞᆸ고 쳔고(千古)의 업ᄉᆞ온 이은(二恩)을 닙ᄉᆞ와 모딘 목숨이 일괴육(一塊肉)을 위ᄒᆞ와 싀여디디 못ᄒᆞᄋᆞᆸ고 이제ᄭᆞ디 셰샹의 머무와 일야(日夜) 셩은(聖恩)만 츅슈(祝壽)ᄒᆞᄋᆞᆸ더니 | 이 글을 올리는 까닭은 제가 부자 사이에도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천고에 없는 은혜를 입어 모진 목숨이 한 덩이 고기가 되어 없어지지 못하고 이제까지 세상에 머물며 밤낮으로 성은만 바랐습니다. |
쳔만몽ᄆᆡ(千萬夢寐) 밧긔 의손(依孫) 봉샹(鳳祥)을 ᄃᆡ계(臺啓) 극뉼(極律)노 쳐단(處斷)ᄒᆞ야디라 ᄒᆞᄋᆞᆸ고 ᄯᅩ 의부뎨(依夫弟) 익명(益命)을 봉샹의 망명(亡命)ᄒᆞᆯ ᄯᅢ 예디(豫知)ᄒᆞ얏다 ᄒᆞᄋᆞᆸ고 듕죄(重罪)ᄅᆞᆯ 주어디라 ᄒᆞᄋᆞᆸᄂᆞᆫ 긔별(寄別)을 듯ᄌᆞᆸ고 | 그러더니 천만의외에 손자 봉상을 사헌부에서 극형으로 처벌하겠다 하고, 또 지아비의 동생인 익명이 봉상이 도망칠 때 미리 알았다 하여 중죄를 내린다고 하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
녀의신이 고ᄃᆡ 죽어 몬져 모ᄅᆞ려 ᄒᆞᄋᆞᆸ다가 다시 ᄉᆡᆼ각ᄒᆞ오니 이 궁텬극디(窮天極地)ᄒᆞᆫ 원혹[1]을 어딘 하ᄂᆞᆯ 아래 저허 ᄌᆞ조ᄒᆞ야 폭ᄇᆡᆨ(暴白)ᄒᆞ디 못ᄒᆞ고 그만ᄒᆞ야 진ᄒᆞ오면 당초 특명으로 사로오신 셩은을 져ᄇᆞ리올 분 아니오라 ᄯᅩ 녀의신이 혼자 닙ᄉᆞ올 죄ᄅᆞᆯ 무고ᄒᆞᆫ 익명을 횡니(橫罹)[2]ᄒᆞ게 되여ᄉᆞ오니 실노 디하의 도라가 의부ᄅᆞᆯ 보올 ᄂᆞᆺ치 업ᄉᆞ와 앗가 | 저는 곧장 죽어 이 일을 모르고자 하였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큰 원통함을 어진 하늘 아래 거리끼고 망설여 알리지 못한 채 그만두어 죽게 되면 당초에 특명으로 살려주신 성은을 저버릴 뿐 아니라 제가 혼자 입어야 할 죄를 무고한 익명이 억울하게 연루될 상황이니 진실로 죽어 지하에 돌아가서도 남편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
튱쳥도 부여 ᄯᅡ흐로셔 촌〃젼진(寸寸前進)ᄒᆞ야 감히 신엄(神嚴) 아래 ᄒᆞᆫ 번 ᄋᆡ호(哀號)ᄒᆞ고 죽기ᄅᆞᆯ 쳥ᄒᆞ오니 오직 셩명(聖明)은 블샹히 너겨 ᄉᆞᆯ피오쇼셔 | 방금 충청도 부여 땅에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여 감히 지엄하신 임금 앞에서 한 번 슬피 부르짖고 죽고자 하오니 오직 성상께서는 불쌍히 여겨 살펴주십시오. |
처엄 봉샹이 죽게 되온 ᄯᅢ 녀의신이 ᄆᆞᄋᆞᆷ의 ᄒᆞ오ᄃᆡ 의부의 가셰(家世) ᄃᆡ〃로 튱뎡(忠貞)을 극진히 ᄒᆞ다가 이제 문호 멸망ᄒᆞ여신ᄃᆞᆯ 하ᄂᆞᆯ이 현마 이 ᄒᆞᆫ 혈쇽(血屬)을 ᄆᆞ자 ᄭᅳᆫ허 삼ᄃᆡ 일시예 의지 업ᄉᆞᆫ 원귀(寃鬼) 되랴 시브와 저ᄅᆞᆯ 망명ᄒᆞ게 ᄒᆞ여ᄉᆞᆸ더니 | 처음 봉상이 죽게 된 때 제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남편의 가문이 대대로 충성을 극진히 하다가 이제 가문이 멸망하더라도 하늘이 설마 이 한 혈육을 마저 끊어버려 삼대가 일시에 의지할 곳 없는 원귀가 되기야 할까 싶었기에 봉상을 도망치게 하였습니다. |
그 후 뎍소(謫所) ᄯᅡ희셔 ᄇᆡᆨ셩들의 뎐ᄒᆞᄂᆞᆫ 말을 듯ᄌᆞ오니 경종대왕(景宗大王)겨오셔 본도보ᄉᆞ(本道報使) 장계(狀啓) 못ᄒᆞ온 젼의 뎐지(傳旨)ᄅᆞᆯ 여러 날 ᄂᆞ리오시디 아니ᄒᆞ오시다가 인ᄒᆞ야 그만ᄒᆞ오시다 ᄒᆞ오니 이ᄂᆞᆫ 경묘(景廟)의 호ᄉᆡᆼ(好生)ᄒᆞ시ᄂᆞᆫ 은덕이 하ᄂᆞᆯ ᄀᆞᆺᄌᆞ오시고 | 그 후에 적소에서 백성들이 전하는 말을 들으니 경종대왕께서는 본도의 보고하는 관리가 장계를 올리기 전에 여러 날이 되도록 (처벌하라는) 교지를 내리지 않으시다가 곧 그만두셨다 하니 이는 경종대왕의 호생지덕(好生之德)[3]이 하늘처럼 높은 것입니다. |
을ᄉᆞ년의 니ᄅᆞ러 셩샹이 군하(群下)의 말ᄉᆞᆷ을 기ᄃᆞ리디 아니ᄒᆞ오샤 의뷔 ᄆᆞᄎᆞᆷ내 졀ᄉᆞ(絶嗣)[4]ᄒᆞᆫ가 너기오셔 방손(傍孫)[5]을 녹용(錄用)ᄭᆞ디 ᄒᆞ오시고 밋 녀의신이 봉샹을 ᄃᆞ리ᄋᆞᆸ고 궐하(闕下)의 와 ᄃᆡ명(代命)[6]ᄒᆞ오니 셩샹이 져ᄅᆞᆯ 블러 위로ᄒᆞ오시ᄆᆞᆯ 가인(家人) 부ᄌᆞ(父子)나 다ᄅᆞ디 아니케 ᄒᆞ오시고 녀의신을 ᄃᆡ명 말라ᄭᆞ디 ᄒᆞ오시니 | 을사년에 이르러 성상께서 신하들의 건의를 기다리지 않고 남편이 마침내 후손이 끊어졌다고 여기시고 방손을 채용하기까지 하셨으며, 제가 봉상을 데리고 대궐 앞에 가 대신 죽기를 청하자 성상께서는 저를 불르 위로하시기를 집안 사람이나 부자 대하듯 하시면서 대명하지 말라고까지 하셨습니다. |
이ᄂᆞᆫ 고금의 업ᄉᆞ온 은악(恩渥)이라 셰셰ᄉᆡᆼᄉᆡᆼ(世世生生)에 몸을 ᄆᆞᄋᆞ고 ᄲᅨ ᄀᆞᆯ리 되야도 죡히 갑디 못ᄒᆞ올 거시니 | 이는 고금에 없는 큰 은혜인지라 여러 번 태어나 몸을 빻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
오ᄂᆞᆯ날 와 ᄒᆞᆫ 번 죽기ᄅᆞᆯ 어이 감히 ᄉᆞ양ᄒᆞ오리잇가마ᄂᆞᆫ 다만 셩샹의 이러ᄐᆞᆺ ᄒᆞ오신 셩덕이 ᄒᆞᆫ갓 고과(孤寡)ᄅᆞᆯ 블샹히 너기시미 아니라 | 그러니 오늘에 이르러 한 번 죽기를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마는 다만 성상의 이러하신 성덕이 한갓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심이 아닐 것입니다. |
진실노 의뷔 평일의 나라 위ᄒᆞ야 진ᄎᆒ(盡悴)ᄒᆞᄋᆞᆸ던 졍셩을 구버 ᄉᆡᆼ각ᄒᆞ오셔 십년샹약(十年嘗藥)의 우국망가(憂國亡家)라 ᄒᆞ오시고 관일지튱(貫一之忠)이 잇다 ᄒᆞ오셔 일로 브ᄃᆡ ᄒᆞᆫ 혈쇽이나 ᄭᅳᆫ티 마라 셜워ᄒᆞ며 주리ᄂᆞᆫ 귀신이 되디 아니콰져 ᄒᆞ오시ᄂᆞᆫ가 ᄒᆞᄂᆞ이다 | 진실로 제 남편이 평소 나라를 위해 몸이 여위도록 마음과 힘을 다하던 정성을 굽어살피시고 십년간 병을 앓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하다가 가문이 멸망한 것이라 하시며 일관된 충심이 있다고 생각하셔서 이 일로 부디 한 혈육이라도 대를 이어 서러워하며 굶주리는 귀신이 되지 않게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러ᄒᆞ온 거ᄉᆞᆯ 시졀 사ᄅᆞᆷ들이 ᄆᆞ자 죽여 업시ᄒᆞ랴 ᄒᆞ오니 이ᄂᆞᆫ 셩샹의 호ᄉᆡᆼᄒᆞ시ᄂᆞᆫ 덕이 도로혀 져희 ᄉᆞᄉᆞ원슈(私私怨讐) 갑ᄂᆞᆫ 거시 될가 셜워ᄒᆞᄂᆞ이다 | 이런 것을 요즘 사람들이 마저 죽여 없애려 하니 이는 성상의 호생지덕이 도리어 저들의 사사로운 복수가 될까봐 서럽습니다. |
ᄯᅩ 의부뎨 익명은 임인년 뉵월 초이일 튱쳥도 홍산(鴻山) ᄯᅡ흐로셔 젼나도(全羅道) 광ᄌᆔ(光州) 뎍소로 바로 가ᄋᆞᆸ고 | 또 익명은 임인년 6월 2일에 충청도 홍산 땅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지로 곧바로 갔습니다. |
녀의신만 혼자 봉샹을 ᄃᆞ리ᄋᆞᆸ고 부여 ᄯᅡᄒᆡ 잇ᄉᆞᆸ더니 뉵월 스므이튼날의 부묘하(父墓下)의 보내여ᄉᆞᆸ다가 간 두어 날 후의 ᄌᆞ긔지의[7] 연좌(連坐) 긔별 듯ᄌᆞᆸ고 녀의신이 ᄀᆞ만이 봉샹의 잇ᄂᆞᆫ ᄃᆡ로 통ᄒᆞ야 그리로셔 나가게 ᄒᆞ야ᄉᆞ오니 | 저 혼자 봉상을 데리고 부여 땅에 있었는데 6월 22일에 아버지 묘소로 보냈다가 봉상이 간 지 두어 날 뒤에 연좌된다는 기별을 듣고 제가 남몰래 봉상이 있는 곳에 알려 그곳에서 곧장 달아나게 하였습니다. |
이 다 녀의신의 ᄒᆞ온 일이오며 셜ᄉᆞ 의논ᄒᆞ랴 ᄒᆞ와도 익명의 귀향[8] 가온 ᄯᅡ히 샹게(相距) ᄉᆞ오ᄇᆡᆨ 니(里)오니 ᄒᆞᆫ 집안 사ᄅᆞᆷ이라도 모ᄅᆞ게 ᄒᆞ고져 ᄒᆞᄋᆞᆸ거든 어이 오뉵일 뎡(程)의셔 왕복(往復)ᄒᆞ야 사ᄅᆞᆷ의 이목(耳目)을 번거케 ᄒᆞ오리잇가 ᄯᅩ 그ᄯᅢ 익명이 독ᄒᆞᆫ 니질(痢疾)을 어더 인ᄉᆞ(人事)ᄅᆞᆯ 모ᄅᆞ오니 이ᄂᆞᆫ 압거(押去)ᄒᆞ던 나졸(羅卒)이 아ᄂᆞᆫ 일이오니 | 이것이 모두 다 제가 한 일이며, 설령 의논하려 해도 익명이 귀양 간 땅이 이곳과 4~500 리 거리이므로 한 집안 사람이라도 모르게 하려 하면서 어찌 5~6일 거리를 왕복하여 사람의 이목을 끌겠습니까? 또 그때 익명은 독한 이질을 앓아 의식이 없었으니 이는 압송하던 나졸들도 아는 일입니다. |
비록 ᄒᆞᆫ 집의 잇ᄉᆞ와도 병이 인ᄉᆞᄅᆞᆯ 모ᄅᆞ온 후ᄂᆞᆫ 이런 일을 의논을 못ᄒᆞ오려ᄃᆞᆫ ᄒᆞᄆᆞᆯ며 먼니셔 엇디 아오리잇가 이ᄂᆞᆫ 녀의신이 손조 쥬댱(主掌)ᄒᆞ온 일이오니 실노 의부뎨 익명의게 간셥ᄒᆞᆫ 배 죠곰도 업ᄉᆞᆸᄂᆞ니이다 | 비록 한 집에 있어도 병으로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의논할 수 없는데, 하물며 멀리서 어찌 알겠습니까? 이는 제가 손수 주장한 일이며, 진실로 익명과는 관련된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
이ᄂᆞᆫ 시졀 사ᄅᆞᆷ들이 녀의신을 죽여ᄂᆞᆫ 블관(不關)ᄒᆞ오매 익명을 ᄆᆞ자 죽여 노쇼(老少) 업시 젹족(赤族)[9]ᄒᆞ게 ᄒᆞ려 ᄒᆞ고 브ᄃᆡ 익명의게로 억늑(抑勒)ᄒᆞ야 모라보내오니 이 아니 지원극통(至寃極痛)ᄒᆞ오니잇가 녀의신이 만 번 죽기ᄅᆞᆯ ᄉᆞ양티 아니ᄒᆞᄋᆞᆸ고 부월(斧鉞)의 업듸기ᄅᆞᆯ 쳥ᄒᆞ오니 | 이는 요즘 사람들이 저를 죽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까닭에 익명을 마저 죽여 노수 없이 멸문시키려고 억지로 익명에게까지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이 어찌 지극히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만 번 죽기를 사양하지 않고 형벌 받기를 간청합니다. |
바라ᄋᆞᆸᄂᆞ니 텬디부모(天地父母)ᄂᆞᆫ 특별히 이 원혹ᄒᆞᆫ 졍ᄉᆞ(情事)ᄅᆞᆯ ᄉᆞᆯ피오셔 마치 녀의신만 버히오시고 봉샹의 명을 빌리오셔 의부의 혈ᄉᆞ(血嗣)ᄅᆞᆯ 닛고 의부뎨 익명을난 횡니ᄒᆞᄂᆞᆫ 화ᄅᆞᆯ 면케 ᄒᆞ오쇼셔 | 바라건대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임금께서는 특별히 이 원통한 사정을 살피셔서 저만 죽이시고 봉상의 목숨을 살려주셔서 남편의 핏줄을 잇게 하시고, 익명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화를 면하게 해주십시오. |
옹졍(擁正) 오년(五年) 십월일(十月日) | 옹정 5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