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선 전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개념정보 | {{개념정보 | ||
|사진= 민족팀_일러_지하철.png | |사진= 민족팀_일러_지하철.png | ||
− | |사진출처= | + | |사진출처= |
|대표명칭= 영동선 전철 | |대표명칭= 영동선 전철 | ||
|한자표기= 嶺東線 號線 | |한자표기= 嶺東線 號線 | ||
10번째 줄: | 10번째 줄: | ||
}} | }} | ||
=='''정의'''== | =='''정의'''== | ||
− |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를 연결하는 | + |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선이다.<ref>김경추, 정암,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0302559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내용'''== | =='''내용'''== | ||
17번째 줄: | 17번째 줄: | ||
===건립경위=== | ===건립경위=== | ||
1949년 정부가 수립된 뒤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한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립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육성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생산현장을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ref>유우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7320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 1949년 정부가 수립된 뒤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한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립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육성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생산현장을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ref>유우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7320 영동선]", <html><online style="color:purple">『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 ||
− | [[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 + | [[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1972년 12월 6일 전철화 공사가 시작된 영동선 전철은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기철도|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 톤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ref>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423968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ref><br/> |
===의의=== | ===의의=== | ||
− |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 + |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ref>김영기, 손승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312 전기철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지식관계망'''== | =='''지식관계망'''== | ||
31번째 줄: | 31번째 줄: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 | ||
+ | | [[영동선 전철]] ||[[전기철도]] || A의 유형은 B이다 || A dcterms:type B | ||
|- | |- | ||
| [[영동선 전철]] || [[영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영동선 전철]] || [[영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 | ||
− | | | + | | [[영동선]]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 | |||
|- | |- | ||
− | | | + |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중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 ||
− | | | + |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태백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 ||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75번째 줄: | 75번째 줄: | ||
[[분류:민족기록화]][[분류:개념]] | [[분류:민족기록화]][[분류:개념]] | ||
− | [[분류:민족/ | + | [[분류:민족/교열완료]] |
2017년 11월 14일 (화) 21:04 판
영동선 전철 (嶺東線 號線) |
|
대표명칭 | 영동선 전철 |
---|---|
한자표기 | 嶺東線 號線 |
영문명칭 | Yeongdong Line |
이칭 | 영동선 |
유형 | 지명 |
관련개념 | 전기철도 |
목차
정의
강원도 강릉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선이다.[1]
내용
현재의 영동선 노선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것은 철암선(철암∼묵호간)으로 이미 1940년 8월에 개통되었으며, 삼척선(삼척∼북평간)은 1944년 2월, 동해북부선(묵호∼강릉간)은 196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영동선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을 차지하는 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12월 개통되었다. 영암선의 건설은 해방 이후 산업의 부흥을 위하여 최초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2]
건립경위
1949년 정부가 수립된 뒤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제식민지 정책에 의한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자립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육성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생산현장을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3]
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1972년 12월 6일 전철화 공사가 시작된 영동선 전철은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 톤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4]
의의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5]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영동선 전철 | 전기철도 | A의 유형은 B이다 | A dcterms:type B |
영동선 전철 | 영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영동선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중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태백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산업선 전철화 정책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경제개발 5개년계획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경제개발 5개년계획 | 박정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동선, 태백선 개통[6]
영상
- KTV 대한뉴스 - 제 1060호-산업선 전철 영동선 개통(게시일: 2016년 12월 8일)
주석
- ↑ 김경추, 정암, "영동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중앙일보,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
- ↑ 김영기, 손승호,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유우익, "영동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