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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 16:37 판
귀부 (龜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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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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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龜趺 |
이칭 | 비좌석(碑座石) |
관련개념 | 탑비(塔碑), 이수(螭首), 제액(題額) |
정의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내용
거북의 잔등에 장방형의 비좌(碑座)를 마련하고 그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는 일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그 후 전 시대에 성행했는데, 그것은 거북이 만년을 산다는 장수의 상징으로서 비의 영원성을 표현하는 데 이용되었기 때문이다.[1]
삼국시대 때 석비는 대체로 비좌 없이 그대로 땅에 묻어 세우거나, 혹 비좌가 있다 하더라도 자연석을 비좌로 삼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당나라 석비의 영향을 받아 귀부(龜趺)를 비좌로 삼게 되어 그 뒤로 이러한 형태는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석비의 전형이 되었다.[2]
귀부는 시대가 변하면서 용의 모습 외에 해태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사실적인 거북 모양에서 점차 변형되어 장중한 것, 패기에 넘치는 것, 우아한 것 등 형태를 달리한 것이 많다.[3]
현존하는 귀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661년에 세운 경주 태종무열왕릉비(慶州 太宗武烈王陵碑)의 귀부로, 목을 앞으로 쭉 뻗고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다문 거북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수법으로 조각되어 있다.[4]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탑비 | 귀부 | A는 B를 포함한다 | |
탑비 | 이수 | A는 B를 포함한다 | |
탑비 | 제액 | A는 B를 포함한다 |
시각자료
갤러리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884)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887)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9세기 말)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 자적선사능운탑비 (941)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943)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944)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958)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1385)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1653)
주석
- ↑ 정영호, "귀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정영호, "귀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귀부",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정영호, "귀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정영호, "귀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귀부",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귀부",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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