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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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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儀禮)의 궤범(軌範)이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여러 의례의 표준을 담고 있다.<ref>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쪽. </ref>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의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갔던 297권의 어람용과 국내에 없는 유일본 의궤를 2011년 4월 14일에 반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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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 행사가 끝난 후에 시작부터 진행 과정, 소요 비용, 인원, 의식 절차, 행사 후 논공행상 등에 관하여 기록한 책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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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례의 진행 사항은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자료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세부적인 행사의 준비나 진행 과정, 참여자 명단, 행사 비용 등을 기록할 공간이 없고, 행사의 주요 장면이나 복식, 물품들은 표현하기가 제대로 표현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한 행사를 위한 모든 과정을 총괄적으로 보여줄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ref>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쪽.</ref> 의례 행사는 행사를 주관하는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의 설치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즉시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고 그 행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를 편찬했다. [[의궤]]는 행사보고서로 목차는 담당 관리들의 명단인 ‘좌목(座目)’, 왕의 전교 및 신하들의 건의사항인 ‘계사(啓辭)’, 예조·병조·호조 등 각 기관별로 나누어 주고받은 공문서인 ‘예관(禮關)’ㆍ’이문(移文)’ㆍ’내관(來關)’, 하급 관청에서 상급 관청으로 보낸 보고인 ‘품목(稟目)’, 상급 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지시한 문서인 ‘감결(甘結)’, 봉명관(奉命官)의 복명서(復命書)인 ‘서계(書啓)’,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포상인 ‘논상(論賞)’, 교명(敎命, 왕의 명령)과 의대(衣襨, 복식) 등을 주관한 부서인 ‘일방의궤(一房儀軌)’, 수레와 깃발 등의 도구를 관장하는 ‘이방의궤(二房儀軌)’, 각종 그릇과 물품을 담당하는 ‘삼방의궤(三房儀軌)’, 각 방에서 부족한 물품을 추가로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한 ‘별공작의궤(別工作儀軌)’, ‘반차도(班次圖)’의 순서이다. 국가적 행사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전담 기구를 설치해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후 [[의궤]]를 편찬하여 국왕 및 관련 기관에 보고하면 행사의 전 과정이 마무리된다.<ref>김문식ㆍ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2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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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儀禮)의 궤범(軌範)이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여러 의례의 표준을 담고 있다.<ref>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쪽. </ref>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의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갔던 297권의 어람용과 국내에 없는 유일본 의궤를 2011년 4월 14일에 반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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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례의 진행 사항은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자료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세부적인 행사의 준비나 진행 과정, 참여자 명단, 행사 비용 등을 기록할 공간이 없고, 행사의 주요 장면이나 복식, 물품들은 표현하기가 제대로 표현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한 행사를 위한 모든 과정을 총괄적으로 보여줄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ref>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쪽.</ref> 의례 행사는 행사를 주관하는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즉시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고 그 행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를 편찬했다. [[의궤]]는 행사보고서로서 목차는 담당 관리들의 명단인 ‘좌목(座目)’, 왕의 전교 및 신하들의 건의사항인 ‘계사(啓辭)’, 예조·병조·호조 등 각 기관별로 나누어 주고받은 공문서인 ‘예관(禮關)’ㆍ’이문(移文)’ㆍ’내관(來關)’, 하급 관청에서 상급 관청으로 보낸 보고인 ‘품목(稟目)’, 상급 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지시한 문서인 ‘감결(甘結)’, 봉명관(奉命官)의 복명서(復命書)인 ‘서계(書啓)’,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포상인 ‘논상(論賞)’, 교명(敎命, 왕의 명령)과 의대(衣襨, 복식) 등을 주관한 부서인 ‘일방의궤(一房儀軌)’, 수레와 깃발 등의 도구를 관장하는 ‘이방의궤(二房儀軌)’, 각종 그릇과 물품을 담당하는 ‘삼방의궤(三房儀軌)’, 각 방에서 부족한 물품을 추가로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한 ‘별공작의궤(別工作儀軌)’, ‘반차도(班次圖)’의 순서로 구성된다. 국가적 행사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전담 기구를 설치해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후 [[의궤]]를 편찬하여 국왕 및 관련 기관에 보고하면 행사의 전 과정이 마무리된다.<ref>김문식ㆍ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2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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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는 보통 5~8부가 제작되었는데, 열람자나 보관처에 따라 명칭을 달리해 왕의 열람을 위해 고급재료로 화려하게 만드는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한다. ‘어람용’은 [[규장각]]이 설립된 이후 주로 [[규장각]]에서 보관하다가 1782년 유사시를 대비해 강화도의 [[외규장각]]으로 옮겨졌고, 분상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국가 전례를 관장하는 기관과 강화도 정족산, 무주 적상산, 강릉 오대산, 봉화 태백산 사고에 분산해 보관했다.<ref>김문식ㆍ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5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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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는 보통 5~8부가 제작되었는데, 열람자나 보관처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 왕의 열람을 위해 고급재료로 화려하게 만드는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한다. ‘어람용’은 [[규장각]]이 설립된 이후 주로 [[규장각]]에서 보관하다가 1782년 유사시를 대비해 강화도의 [[외규장각]]으로 옮겨졌고, 분상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국가 전례를 관장하는 기관과 강화도 정족산, 무주 적상산, 강릉 오대산, 봉화 태백산 사고에 분산해 보관했다.<ref>김문식ㆍ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5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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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송옥, 『朝鮮王朝 宮中儀軌服飾』, 수학사, 1991.
 
* 유송옥, 『朝鮮王朝 宮中儀軌服飾』, 수학사, 1991.
 
* 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 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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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궁중기록화]] [[분류:개념]] [[분류:용어]]

2017년 11월 4일 (토) 11:19 기준 최신판

의궤
(儀軌)
국립중앙박물관(http://www.museum.go.kr/)
대표명칭 의궤
한자표기 儀軌
유형 개념



정의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 행사가 끝난 후에 시작부터 진행 과정, 소요 비용, 인원, 의식 절차, 행사 후 논공행상 등에 관하여 기록한 책이다.

내용

‘의례(儀禮)의 궤범(軌範)이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여러 의례의 표준을 담고 있다.[1]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의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갔던 297권의 어람용과 국내에 없는 유일본 의궤를 2011년 4월 14일에 반환하였다. 왕실의례의 진행 사항은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자료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세부적인 행사의 준비나 진행 과정, 참여자 명단, 행사 비용 등을 기록할 공간이 없고, 행사의 주요 장면이나 복식, 물품들은 표현하기가 제대로 표현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한 행사를 위한 모든 과정을 총괄적으로 보여줄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2] 의례 행사는 행사를 주관하는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즉시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고 그 행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를 편찬했다. 의궤는 행사보고서로서 목차는 담당 관리들의 명단인 ‘좌목(座目)’, 왕의 전교 및 신하들의 건의사항인 ‘계사(啓辭)’, 예조·병조·호조 등 각 기관별로 나누어 주고받은 공문서인 ‘예관(禮關)’ㆍ’이문(移文)’ㆍ’내관(來關)’, 하급 관청에서 상급 관청으로 보낸 보고인 ‘품목(稟目)’, 상급 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지시한 문서인 ‘감결(甘結)’, 봉명관(奉命官)의 복명서(復命書)인 ‘서계(書啓)’,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포상인 ‘논상(論賞)’, 교명(敎命, 왕의 명령)과 의대(衣襨, 복식) 등을 주관한 부서인 ‘일방의궤(一房儀軌)’, 수레와 깃발 등의 도구를 관장하는 ‘이방의궤(二房儀軌)’, 각종 그릇과 물품을 담당하는 ‘삼방의궤(三房儀軌)’, 각 방에서 부족한 물품을 추가로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한 ‘별공작의궤(別工作儀軌)’, ‘반차도(班次圖)’의 순서로 구성된다. 국가적 행사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전담 기구를 설치해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후 의궤를 편찬하여 국왕 및 관련 기관에 보고하면 행사의 전 과정이 마무리된다.[3]
의궤는 보통 5~8부가 제작되었는데, 열람자나 보관처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 왕의 열람을 위해 고급재료로 화려하게 만드는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한다. ‘어람용’은 규장각이 설립된 이후 주로 규장각에서 보관하다가 1782년 유사시를 대비해 강화도의 외규장각으로 옮겨졌고, 분상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국가 전례를 관장하는 기관과 강화도 정족산, 무주 적상산, 강릉 오대산, 봉화 태백산 사고에 분산해 보관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의궤(儀軌) 의궤청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도제조 의궤(儀軌) A는 B의 담당자였다 A edm:isRelatedTo B
도감 의궤(儀軌) A는 B를 담당하였다 A ekc:administrates B
백관 의궤(儀軌)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반차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반차도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반차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2007년 의궤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1년 외규장각 소장 의궤가 반환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238506 126.9804702 반차도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7.4621075 126.9502654 반차도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37.391972 127.054382 반차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주석

  1. 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쪽.
  2. 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쪽.
  3. 김문식ㆍ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20쪽.
  4. 김문식ㆍ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52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중앙박물관,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국립중앙박물관, 2011.
  • 김문식·신병주, 『의궤,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돌베개, 2005.
  • 유송옥, 『朝鮮王朝 宮中儀軌服飾』, 수학사, 1991.
  • 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