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금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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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때 [[정도전|정도전(鄭道傳)]]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악장(樂章)인 [[몽금척|<몽금척>]]을 춤으로 꾸민 것이다. 악장은 태조가 잠저에 있을 때 꿈에 신령이 금자[金尺]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를 정제하시오."라고 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악장을 만든 뒤 태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정도전에게 채색비단을 내리고 악공에게 익히게 하였다. 춤으로 꾸며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6월 예조와 의례상정소가 함께 조회와 연향악의 용악절도(用樂節度)를 정하였을 때 [[고려사|≪고려사≫]]에 전하는 <오양선 五羊仙>·<무고 舞鼓>등의 정재와 함께 <몽금척>·<수보록 受寶籙>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 이미 춤으로 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금척>이라는 이름으로 [[악학궤범|≪악학궤범≫]]에 그 무의(舞儀)가 전하는데, 죽간자 2인, 족자(簇子)·금척·황개(黃蓋) 각 1인과 춤 12인 등, 총 17인으로 구성되고, 따로 인인장(引人仗)·정절(旌節) 등의 의물을 든 20여 인이 거들어 위의를 더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다시 [[몽금척|<몽금척>]]으로 환원되고, [[악학궤범|≪악학궤범≫]]에서 보이는 호화스러운 의물도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ref> 성경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784 몽금척(夢金尺)]",<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조선 태조 때 [[정도전|정도전(鄭道傳)]]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악장(樂章)인 [[몽금척|<몽금척>]]을 춤으로 꾸민 것이다. 악장은 태조가 잠저에 있을 때 꿈에 신령이 금자[金尺]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를 정제하시오."라고 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악장을 만든 뒤 태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정도전에게 채색비단을 내리고 악공에게 익히게 하였다. 춤으로 꾸며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6월 예조와 의례상정소가 함께 조회와 연향악의 용악절도(用樂節度)를 정하였을 때 [[고려사|≪고려사≫]]에 전하는 <오양선 五羊仙>·<무고 舞鼓>등의 정재와 함께 <몽금척>·<수보록 受寶籙>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 이미 춤으로 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금척>이라는 이름으로 [[악학궤범|≪악학궤범≫]]에 그 무의(舞儀)가 전하는데, 죽간자 2인, 족자(簇子)·금척·황개(黃蓋) 각 1인과 춤 12인 등, 총 17인으로 구성되고, 따로 인인장(引人仗)·정절(旌節) 등의 의물을 든 20여 인이 거들어 위의를 더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다시 [[몽금척|<몽금척>]]으로 환원되고, [[악학궤범|≪악학궤범≫]]에서 보이는 호화스러운 의물도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ref> 성경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784 몽금척(夢金尺)]",<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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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일 (목) 01:18 판
몽금척 (夢金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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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몽금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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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夢金尺 |
이칭 | 금척 |
정의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1]
내용
유래
조선 태조 때 정도전(鄭道傳)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악장(樂章)인 <몽금척>을 춤으로 꾸민 것이다. 악장은 태조가 잠저에 있을 때 꿈에 신령이 금자[金尺]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를 정제하시오."라고 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악장을 만든 뒤 태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정도전에게 채색비단을 내리고 악공에게 익히게 하였다. 춤으로 꾸며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6월 예조와 의례상정소가 함께 조회와 연향악의 용악절도(用樂節度)를 정하였을 때 ≪고려사≫에 전하는 <오양선 五羊仙>·<무고 舞鼓>등의 정재와 함께 <몽금척>·<수보록 受寶籙>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 이미 춤으로 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금척>이라는 이름으로 ≪악학궤범≫에 그 무의(舞儀)가 전하는데, 죽간자 2인, 족자(簇子)·금척·황개(黃蓋) 각 1인과 춤 12인 등, 총 17인으로 구성되고, 따로 인인장(引人仗)·정절(旌節) 등의 의물을 든 20여 인이 거들어 위의를 더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다시 <몽금척>으로 환원되고, ≪악학궤범≫에서 보이는 호화스러운 의물도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당악정재 | 몽금척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정도전 | 몽금척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몽금척 | 외진연시 무동 각 정재 무도 홀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금척 | 몽금척 | A는 B와 유사하다 | A owl:sameAs B |
악학궤범 | 몽금척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주석
참고문헌
- 사료
- 『태조실록』
- 『태종실록』
- 『악학궤범』
- 저서
- 이홍구, 『한국궁중무용총서 . 4 , 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 보고사, 2008.
- 국립국악원, 『궁중무용무보 . 제10집 , 몽금척·가인전목단』, 국립국악원, 2003.
- 국립국악원, 『夢金尺. 佳人剪牧丹』, 국립국악원, 2003.
- 성현, 유자광, 신말평, 『국역악학궤범』, 민족문화추진회, 1980.
-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9.
- 논문
- 권문숙, 「조선시대 유교 정치적 측면으로 본 몽금척·수보록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전통무용전공 석사학위논문, 2016.
- 이현숙, 「궁중정재 <몽금척>설화의 문화콘텐츠 개발 연구」,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예술경영전공, 석사학위논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