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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일 (수) 02:17 판
비격진천뢰 (飛擊震天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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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비격진천뢰 |
---|---|
한자표기 | 飛擊震天雷 |
이칭 | 진천뢰, 비진천뢰 |
유형 | 무기 |
시대 | 조선 |
지정번호 | 보물 제860호 |
지정일 | 1986년 3월 14일 |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관련인물 | 이장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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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 중기에 사용되었던 화기(火器).[1]
내용
이장손이 발명
군기시(軍器寺) 화포장(火砲匠)이었던 이장손(李長孫)이 만든 대완구(大碗口)라는 중화기로 쏜 포탄으로, 임진왜란 때 공성화기(攻城火器)로서 위력을 발휘하였다. 위 아래는 둥글고, 허리는 퍼진 모양이며, 위 한가운데는 뚜껑인 개철을 덮을 수 있도록 방형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신관(信管)과 같은 발화장치인 죽통을 넣을 수 있도록 구경 5.5cm 정도의 구멍이 있다. 허리 부분에는 화약을 넣기 위하여 지름 2.5㎝의 구멍을 내었다.[2]
일종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의 가장 큰 특징은 폭발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라는 점이다. 즉 대나무 통 속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나선형의 목곡(木谷)이 들어가는데, 빨리 폭발시키려면 10곡(曲), 늦게 폭발시키려면 15곡으로 약선을 감아서 넣었다. 대나무 통의 도화선 끝은 덮개의 구멍을 통하여 밖으로 빼내어 발사할 때 불을 붙였다.[3]
발사할 때는 대나무 통을 넣고, 속에 화약과 사람과 말을 살상시키기 위한 예리한 삼각철편을 채운 다음, 종이를 가지고 메워 틈이 없도록 한 뒤에 뚜껑인 개철로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허리 부분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화약을 가득 채운 다음 격목으로 구멍을 막고 대완구나 중완구로 발사한다. 420m(300보) 정도 날아가 땅에 떨어진 뒤 도화선이 타들어가 폭발하게 되고 함께 넣은 철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사람이나 말을 다치게 하였다.[4]
여러 전투에 사용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 왜병에게 쫓겨 경상북도 안강(安康)으로 진을 옮긴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박진(朴晋)이 경주싸움 때 경주 판관(判官) 박의장(朴毅長)을 선봉으로 하여 비격진천뢰를 써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수군의 함포(艦砲)에도 이를 이용하여 많은 적의 함선을 부수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비격진천뢰 | 이장손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비격진천뢰 | 진주전투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비격진천뢰 | 행주대첩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비격진천뢰 | 대완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영상
- "조선의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문화유산채널』online , 한국문화재재단.
주석
- ↑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