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면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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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6일 (일) 22:13 판


면복(冕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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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면복(冕服)
이칭별칭 곤면복(袞冕服), 곤복(袞服)
착용신분 왕실
착용성별 남성



정의

왕의 최고 등급의 예복으로, 제사를 지낼 때 착용하는 제복(祭服).

기원

착용신분과 착용상황[1]

  • 조선의 왕, 왕세자, 왕세제, 왕세손, 대한제국 황제와 황태자가 국가 의례 및 일생 의례에 착용함.
  • 국가 의례
    • 책례
    • 등극의례
  • 일생 의례
    • 관례 : 삼가례(三加禮), 조알례(朝謁禮), 알묘례(謁廟禮)
    • 혼례 : 명사봉영(命使奉迎), 임헌초계(臨軒醮戒), 친영례(親迎禮), 동뢰연(同牢宴)
    • 상례
    • 제례 : 제천례(祭天禮), 사직제(社稷祭), 종묘제(宗廟祭), 선농제(先農祭), 문묘제(文廟祭)

내용

유래[2]

  • 주(周)나라 때 육면복의 체계적인 제도 완성.
    • 육면복(六冕服) : 대구면(大裘冕), 곤면(袞冕), 별면(鷩冕), 취면(毳冕), 치면(希冕; 絺冕), 현면(玄冕)[3]
  • 혼란기인 전국시대 이래 파괴되었다가 정치적 전통성을 보장받기 위한 목적으로 후한(後漢) →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 수(隋) → 당(唐) → 송(宋)에 이르기까지 육면복의 제도가 점차 복원됨.
  • 요(遼), 금(金), 원(元) 시대에는 육면복이 점차 곤면복 하나로 단일화되어 가며, 명(明)에 이르러 태조 주원장이 곤면복 한 가지만을 제도화하도록 명령하고 신하들의 면복 착용도 금지함.
  • 청(淸)나라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면복을 사용하지 않게 됨.
  • 우리나라의 경우 면복이 전래된 명확한 기록은 없음.
  •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명칭이 보여 삼국시대에 이미 들어왔던 것으로 추측됨.
  • 『고려사(高麗史)』에 송(宋), 요(遼), 금(金), 명(明) 등의 왕조에서 고려에 면복을 보낸 기록이 확인됨.
  • 조선시대에는 1402년(태종 2)에 처음 면복이 전래되었으며 명(明)이 멸망하는 인조 때까지 계속됨.
  •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까지 명(明)에서 받은 면복을 참조하여 자체 제작하여 착용함.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면복 은 ~에 보관되었다 면복각(冕服閣)
면복 을 착장한 모습이다 문조(文祖) 어진(御眞)
면복 의 왕복식도설은 ~에 그려져있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
면복 의 왕세자복식도설은 ~에 그려져있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
면복 의 왕세손복식도설은 ~에 그려져있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禮)』

참고문헌

주석

  1. 최연우(2015) 『면복』, 문학동네, p. 119~165.
  2. 최연우(2015) 『면복』, 문학동네, p. 13~16.
  3. 국제신문:황태현의 고전 속 성어 <484> 服周之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