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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7954&cid=42636&categoryId=42636 위부인]", 미술대사전(인명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의 서풍을 배웠고,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의 비문을 연구하여 [[해서]]·[[행서]]·[[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하였다. [[당 태종|당 태종(唐 太宗)]]은 그의 글씨를 수집하여 한 조각의 글씨까지도 아끼다가 죽을 때 관에 넣어갔다고 한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3537 왕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62343 왕희지체]",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화가.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7954&cid=42636&categoryId=42636 위부인]", 미술대사전(인명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의 서풍을 배웠고,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의 비문을 연구하여 [[해서]]·[[행서]]·[[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하였다. [[당 태종|당 태종(唐 太宗)]]은 그의 글씨를 수집하여 한 조각의 글씨까지도 아끼다가 죽을 때 관에 넣어갔다고 한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3537 왕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62343 왕희지체]",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 [[해서]]의 대표작으로는 『악의론(樂毅論)<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329&cid=42635&categoryId=42635 악의론]", 미술대사전(인명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황정경(黃庭經)<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40425 황정경]",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이, [[행서]]로는 『난정서(蘭亭序)<ref>중국 동진 왕희지의 행서첩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59389&cid=42635&categoryId=42635 난정서], 미술대사전(인명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초서]]로는 그가 쓴 많은 편지를 모은 『십칠첩(十七帖)<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064&cid=42635&categoryId=42635 십칠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이 유명하다. 또 송(宋)의 태종(太宗)이 992년에 조각한 『순화각첩(淳化閣帖)<ref>중국 송나라 태종 순화(淳化) 3년(992)에 제왕과 대신에게 나누어 준 법첩.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1321 순화각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이라는 법첩에는 그의 편지가 많이 수록되었고, 당(唐)나라의 회인(懷仁)이라는 중이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672년에 [[왕희지]]의 필적 중에서 집자(集字)하여 세운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등도 그의 서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도 『상란첩(喪亂帖)<ref>중국 동진 왕희지의 법서.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1387&cid=42635&categoryId=42635 상란첩]", 미술대사전(용어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공시중첩(孔侍中帖)<ref>중국 동진의 왕희지의 법서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59061&cid=42635&categoryId=42635 공시중첩]", 미술대사전(용어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유목첩(遊目帖)』, 『이모첩(姨母帖)』,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등이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3537 왕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해서]]의 대표작으로는 『악의론(樂毅論)<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329&cid=42635&categoryId=42635 악의론]", 미술대사전(인명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황정경(黃庭經)<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40425 황정경]",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이, [[행서]]로는 『난정서(蘭亭序)<ref>중국 동진 왕희지의 행서첩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59389&cid=42635&categoryId=42635 난정서], 미술대사전(인명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초서]]로는 그가 쓴 많은 편지를 모은 『십칠첩(十七帖)<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064&cid=42635&categoryId=42635 십칠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이 유명하다. 또 송(宋)의 태종(太宗)이 992년에 조각한 『순화각첩(淳化閣帖)<ref>중국 송나라 태종 순화(淳化) 3년(992)에 제왕과 대신에게 나누어 준 법첩.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1321 순화각첩]",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이라는 법첩에는 그의 편지가 많이 수록되었고, 당(唐)나라의 회인(懷仁)이라는 중이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672년에 [[왕희지]]의 필적 중에서 집자(集字)하여 세운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등도 그의 서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도 『상란첩(喪亂帖)<ref>중국 동진 왕희지의 법서.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1387&cid=42635&categoryId=42635 상란첩]", 미술대사전(용어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공시중첩(孔侍中帖)<ref>중국 동진의 왕희지의 법서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59061&cid=42635&categoryId=42635 공시중첩]", 미술대사전(용어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유목첩(遊目帖)』, 『이모첩(姨母帖)』,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등이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3537 왕희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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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5일 (수) 14:13 판
왕희지체 (王羲之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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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왕희지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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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王羲之體 |
정의
중국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글씨체.
내용
왕희지(王羲之)는 동진(東晉)시대 사람으로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서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서예가이다. 서진(西晉)의 여류 서예가인 위부인(衛夫人)[1]의 서풍을 배웠고,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의 비문을 연구하여 해서·행서·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하였다. 당 태종(唐 太宗)은 그의 글씨를 수집하여 한 조각의 글씨까지도 아끼다가 죽을 때 관에 넣어갔다고 한다.[2][3]
해서의 대표작으로는 『악의론(樂毅論)[4] 』 『황정경(黃庭經)[5]』이, 행서로는 『난정서(蘭亭序)[6]』, 초서로는 그가 쓴 많은 편지를 모은 『십칠첩(十七帖)[7]』이 유명하다. 또 송(宋)의 태종(太宗)이 992년에 조각한 『순화각첩(淳化閣帖)[8]』이라는 법첩에는 그의 편지가 많이 수록되었고, 당(唐)나라의 회인(懷仁)이라는 중이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672년에 왕희지의 필적 중에서 집자(集字)하여 세운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등도 그의 서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도 『상란첩(喪亂帖)[9]』, 『공시중첩(孔侍中帖)[10]』, 『유목첩(遊目帖)』, 『이모첩(姨母帖)』,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등이 있다.[11]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비 | 왕희지체 | A는 B로 쓰여졌다 | |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 왕희지체 | A는 B로 쓰여졌다 | |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 왕희지체 | A는 B로 쓰여졌다 | |
왕희지체 | 왕희지 | A는 B와 관련있다 | |
왕희지체 | 해서 | A는 B와 관련있다 | |
왕희지체 | 행서 | A는 B와 관련있다 | |
왕희지체 | 초서 | A는 B와 관련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중국 동진의 여류
화가.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위부인", 미술대사전(인명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왕희지",
『두산백과』online . - ↑ "왕희지체",
『두산백과』online . -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악의론", 미술대사전(인명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황정경",
『두산백과』online . - ↑ 중국 동진 왕희지의 행서첩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난정서, 미술대사전(인명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십칠첩",
『두산백과』online . - ↑ 중국 송나라 태종 순화(淳化) 3년(992)에 제왕과 대신에게 나누어 준 법첩. "순화각첩",
『두산백과』online . - ↑ 중국 동진 왕희지의 법서.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상란첩", 미술대사전(용어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중국 동진의 왕희지의 법서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 "공시중첩", 미술대사전(용어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왕희지",
『두산백과』online . - ↑ "인각사 보현(각)국사비 탁본", 문자자료,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online , 국립중앙박물관. - ↑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탁본", 문자자료,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online ,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