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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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3일 (목) 01:41 판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谷城 泰安寺 廣慈大師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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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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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谷城 泰安寺 廣慈大師塔碑 |
이칭 | 대안사광자대사비(大安寺廣慈大師碑) |
주소 |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산18-1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275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01.21 |
찬자 | 손소(孫紹) |
서자 | 미상 |
각자 | 문민(文旻) |
승려 | 윤다(允多) |
승탑 |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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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泰安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광자대사 윤다(廣慈大師 允多)의 탑비.
탑비
전체 높이 158cm, 너비 91cm, 두께 22cm.
귀부(龜趺) 위에 이수(螭首)만 얹혀져 있는 상태로, 비신(碑身)은 파괴되었다. 945년 대사가 입적한 후, 사리탑(보물 제274호)이 조성되고 950년(광종 1)에 탑비가 조성되었다.
이수의 네 귀퉁이마다 이무기의 머리조각이 돌출되어 있고, 앞면에는 극락조(極樂鳥)로 보이는 새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러한 새 종류의 조각은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53호)이나,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국보 제54호)에서 잘 나타나 있다.[1]
비문
비문은 손소(孫紹)가 짓고, 문민(文旻)이 새겼으며, 글쓴이는 알 수 없다. 비신이 파괴되어 문헌을 통해서 비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는 결락이 극심하여 후반부분은 거의 마멸 상태이고,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도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결락이 심하여 뜻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며,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은 거의 완비한 상태로 되어 있다.[2] 정간(井間)을 치고 쓴 이 비의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의 행서(行書)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초서(草書)도 간간히 나타나며, 또한 결체(結體)에 있어서 약간의 무리와 과장이 여실한 김생(金生)의 독특한 필치를 닮은 글씨들도 섞여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필력이 건경(健勁)하며 아취와 신운(神韻)이 감도는 작품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비하여 서예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음을 보여주는 걸작이다.[3]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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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답사 이후 추가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