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적 소재주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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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7일 (화) 22:08 판
향토적 소재주의(鄕土的 素材主義) 일본의 관전(官展)을 따라 만들어진 조선미술전람회는 내용상으로도 일본의 그것과 다를 수 없었다. 초기 일부를 제외한 심사위원은 일본인 화가였으며 이들은 대부분 일본식 아카데미즘 화풍을 가졌다는 점에서 선전 출품작은 그러한 취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심사는 민족이나 역사,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담거나 저항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제한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하여 다수의 출품작은 현실과 동떨어진 한가로운 일상이나 취미의 장면이나 도시생활을 묘사하였으며, 일본인의 이국적 취미에 따른 조선의 자연풍경 또한 실제의 삶과 무관한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정경을 담은 이른바 향토적 소재주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듯 식민지의 현실을 은폐하고 민족적 현실을 외면하도록 한 현실도피적인 소재의 그림들은 선전을 통한 성공의 수단이 되었으며 역사나 사회에 대한 인식을 외면하고 권위의식에 젖은 한국의 아카데미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결국 한국미술의 건강한 발전에 폐단으로 작용하였으며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표피적이고 왜곡된 인식을 낳게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