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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수는 계송(繼松) 대선사<ref>계송(繼松)은 고려사에서도 찾아지고 있는 계송(戒松)으로 추정하는 연구가 있다. 황인규, 「幻庵 混修의 生涯와 佛敎史的 位置」, 『경주사학』 18, 경주사학회, 1999, 110쪽</ref> 를 은사로 하여 스님이 되었다. 전적을 배웠는데 총명이 남달라 스승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341년 고려 충혜왕 2년에 선시(禪試)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1348년 이웃사람이 급하한 것을 보고 더욱 정진해야 함을 느끼고 금강산에 입산한다. 1350년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경상북도 성주에 주석한다. 5-6년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 + | 혼수는 계송(繼松) 대선사<ref>계송(繼松)은 고려사에서도 찾아지고 있는 계송(戒松)으로 추정하는 연구가 있다. 황인규, 「幻庵 混修의 生涯와 佛敎史的 位置」, 『경주사학』 18, 경주사학회, 1999, 110쪽</ref> 를 은사로 하여 스님이 되었다. 전적을 배웠는데 총명이 남달라 스승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341년 고려 충혜왕 2년에 선시(禪試)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1348년 이웃사람이 급하한 것을 보고 더욱 정진해야 함을 느끼고 금강산에 입산한다. 1350년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경상북도 성주에 주석한다. 5-6년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대자법화경(大字法華經)》을 베껴 써 어머니의 명복을 빈다.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머물고 있는 식영감화상(息影鑑和尙)을 찾아가 《능엄경(楞嚴經)》을 배워 그 진리를 터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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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2일 (수) 23:08 판
혼수(混修)() | |
대표명칭 | 혼수(混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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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wanam |
생몰년 | 1320(충숙왕 7)-1392(태조 1) |
시호 | 보각(普覺) |
호 | 환암(幻菴) |
휘 | 혼수(混修) |
탑호 | 편광(遍光) |
자 | 무작(無作) |
성씨 | 조(趙) |
출신지 | 광주(廣州: 현재의 경기도 광주) |
승탑비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
정의
고려 말 조선 초의 승려
생애
가계와 탄생
어느 날 아버지가 사냥을 나가 사슴 한 마리를 보았는데 사슴이 달아나면서 멈추고 되돌아보곤 하기를 거듭하였다. 활을 쏘려 하다가 이상하게 여겨 돌아보니 새끼가 어머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에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짐승들이 새끼를 염려하는 것이 사람과 어찌 다르랴' 하고 곧 사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몇 개월 후 병을 앓다가 용주(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의 임지에서 죽었다.
스님은 어려서 부터 몸이 약하여 항상 병을 앓았다. 점장이에게 물었더니 "이 아이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면 영원히 병을 앓지 않고 항상 건강하여 마침내 큰 스님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나이 12세가 지나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르기를 "네가 태어났을 때 너의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사슴의 어미가 새끼를 염려하는 것을 보고 감득하여 사냥하는 것을 중지하였으니 이는 곧 네가 자인(慈仁)으로 생명을 보호하는 도리를 이미 강보(襁褓, 어린아이를 업을 때 사용하는 포대기)의 시절부터 나타내 보인 것이니 하물며 점장이의 말도 그와 같음이랴"라고 하였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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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혼수(混修)는 1320년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서 출생하였다. 휘(諱)는 혼수(混脩), 자는 무작(無作), 호는 환암(幻菴)이다. 본성은 조씨(趙氏)로서 경기도 광주(廣州) 풍양현(豊壤縣)이 그 본관이다.[2]
아버지의 휘는 숙령(叔鴒)으로 헌부(憲府, 사헌부의 줄임말)[3]의 산랑(散郞)[4]이요, 어머니는 경씨(慶氏)로서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모두 사족(士族)이다.
출가수행
1341년 고려 충혜왕 2년에 선시(禪試)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 ||
출처: |
혼수는 계송(繼松) 대선사[5] 를 은사로 하여 스님이 되었다. 전적을 배웠는데 총명이 남달라 스승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341년 고려 충혜왕 2년에 선시(禪試)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1348년 이웃사람이 급하한 것을 보고 더욱 정진해야 함을 느끼고 금강산에 입산한다. 1350년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경상북도 성주에 주석한다. 5-6년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대자법화경(大字法華經)》을 베껴 써 어머니의 명복을 빈다.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머물고 있는 식영감화상(息影鑑和尙)을 찾아가 《능엄경(楞嚴經)》을 배워 그 진리를 터득하였다.
공부선
입적
관련항목
참고문헌
각주
- ↑ 이지관,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 환암 정혜원융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45쪽.
- ↑ 이지관,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 환암 정혜원융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44쪽. "유명 조선국 보각국사비명", 「비명류」, 『양촌선생문집』 제37권. 한국고전종합DB, 고전번역서, 한국고전번역원.
- ↑ 이지관,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 환암 정혜원융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44쪽. 각주 26.
- ↑ 고려 때 육조(六曹)에 소속되어 있던 관원으로 좌랑 또는 원외랑이라고도 하였으며 정6품이었다. 이지관,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 환암 정혜원융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45쪽. 각주 28.
- ↑ 계송(繼松)은 고려사에서도 찾아지고 있는 계송(戒松)으로 추정하는 연구가 있다. 황인규, 「幻庵 混修의 生涯와 佛敎史的 位置」, 『경주사학』 18, 경주사학회, 1999, 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