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 초상(단령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정의) |
(→내용) |
||
19번째 줄: | 19번째 줄: | ||
=='''내용'''== | =='''내용'''== | ||
===초상의 제작 및 보관=== | ===초상의 제작 및 보관=== | ||
− | + | 강세황 초상은 [[강세황]]의 나이 71세에 [[기로소|기로소(耆老所)]]에 입사한 것을 기념하여 [[조선 정조|정조]]가 명하고 [[이명기]]가 그린 그림으로, [[전신의좌상]]의 정장관복본 초상화이다. 화폭의 오른쪽 상단에 "표암강공 칠십일세 초상(豹菴姜公七十一歲眞)"이라 쓰여 있으며, 이어서 [[조선 정조|정조]]가 내린 [[[[강세황 초상(단령본) 어제 찬문|어제 찬문]]이 있다. 글씨는 명필 [[조윤형]]이 썼다. | |
− | 이 그림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강세황]]의 셋째 아들 [[강관]]이 기록한 「[[계추기사|계추기사(癸秋記事)]]」에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강세황]]이 [[기로소]]에 들어간 지 두 달 후 계묘년(1783) 7월부터 8월까지 [[조선 정조|정조]]의 전교에 따라 초상화를 제작했던 일련의 과정과 감상기록 등을 일기체로 기록하였다.<ref>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331쪽.</ref> | + | |
− | + | 이 그림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강세황]]의 셋째 아들 [[강관]]이 기록한 「[[계추기사|계추기사(癸秋記事)]]」에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강세황]]이 [[기로소]]에 들어간 지 두 달 후 계묘년(1783) 7월부터 8월까지 [[조선 정조|정조]]의 전교에 따라 초상화를 제작했던 일련의 과정과 감상기록 등을 일기체로 기록하였다.<ref>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331쪽.</ref> | |
+ | |||
+ | 강세황 초상은 유일하게 전하는 [[강세황]]의 정장관복본 초상화로 그 형식은 [[공신도상]]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반기 초상화에는 거의 나와 있지 않던 손이 이 초상화에서는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 재현되어 있는 점 등에서 초상화의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통적인 부분과 새로운 부분이 잘 절충된 뛰어난 작품이다. | ||
===문헌에 기록된 외모=== | ===문헌에 기록된 외모=== | ||
− | [[강세황]]의 외모에 관해서는 스스로가 이렇게 기록했다. | + | [[강세황]]의 외모에 관해서는 스스로가 이렇게 기록했다. |
{{blockquote | {{blockquote | ||
|옹은 키가 작고 외모가 보잘 것 없어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 중에 그 속에 이렇게 탁월한 지식과 깊은 견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싱긋이 한번 웃고 말았다 | |옹은 키가 작고 외모가 보잘 것 없어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 중에 그 속에 이렇게 탁월한 지식과 깊은 견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싱긋이 한번 웃고 말았다 | ||
31번째 줄: | 33번째 줄: | ||
===초상에 묘사된 모습=== | ===초상에 묘사된 모습=== | ||
− | + | 강세황 초상은 [[사모|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호피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팔분면]]의 전신좌상이다. [[단령]]에는 [[운보문]]이 가득히 그려졌으며 [[흉배|쌍학흉배]]에 [[품대|삽금대]]를 착용하고 있어 정2품의 관직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명암법이 꽤 원숙하게 사용되어서 옷주름의 골과 겹쳐지는 부분 등을 어둡게 표현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 |
+ | |||
안면의 묘사는 70세 때의 <[[강세황 초상(자화상)|강세황 자화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안면처리법은 물론, 안면의 각도나 시선이 멈춘 곳까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ref>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눌와, 2007, 428쪽.</ref> 눈가의 주름, 팔자주름, 뺨 등에 잔붓질을 가하여 얼굴에 입체감을 주고 있다. | 안면의 묘사는 70세 때의 <[[강세황 초상(자화상)|강세황 자화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안면처리법은 물론, 안면의 각도나 시선이 멈춘 곳까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ref>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눌와, 2007, 428쪽.</ref> 눈가의 주름, 팔자주름, 뺨 등에 잔붓질을 가하여 얼굴에 입체감을 주고 있다. | ||
2017년 10월 3일 (화) 18:27 판
강세황 초상 | |
한자명칭 | 姜世晃 肖像 |
---|---|
작가 | 이명기 |
제작시기 | 1783년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590호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145.5x94.0㎝ |
목차
정의
조선시대 문인, 예술가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강세황 초상은 강세황의 나이 71세에 기로소(耆老所)에 입사한 것을 기념하여 정조가 명하고 이명기가 그린 그림으로, 전신의좌상의 정장관복본 초상화이다. 화폭의 오른쪽 상단에 "표암강공 칠십일세 초상(豹菴姜公七十一歲眞)"이라 쓰여 있으며, 이어서 정조가 내린 [[어제 찬문이 있다. 글씨는 명필 조윤형이 썼다.
이 그림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강세황의 셋째 아들 강관이 기록한 「계추기사(癸秋記事)」에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강세황이 기로소에 들어간 지 두 달 후 계묘년(1783) 7월부터 8월까지 정조의 전교에 따라 초상화를 제작했던 일련의 과정과 감상기록 등을 일기체로 기록하였다.[1]
강세황 초상은 유일하게 전하는 강세황의 정장관복본 초상화로 그 형식은 공신도상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반기 초상화에는 거의 나와 있지 않던 손이 이 초상화에서는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 재현되어 있는 점 등에서 초상화의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통적인 부분과 새로운 부분이 잘 절충된 뛰어난 작품이다.
문헌에 기록된 외모
강세황의 외모에 관해서는 스스로가 이렇게 기록했다.
옹은 키가 작고 외모가 보잘 것 없어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 중에 그 속에 이렇게 탁월한 지식과 깊은 견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싱긋이 한번 웃고 말았다 | ||
출처: 강세황(姜世晃), 「표옹자지豹翁自誌」, 『표암유고(豹菴遺稿)』, 권6.[2] |
초상에 묘사된 모습
강세황 초상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호피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팔분면의 전신좌상이다. 단령에는 운보문이 가득히 그려졌으며 쌍학흉배에 삽금대를 착용하고 있어 정2품의 관직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명암법이 꽤 원숙하게 사용되어서 옷주름의 골과 겹쳐지는 부분 등을 어둡게 표현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안면의 묘사는 70세 때의 <강세황 자화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안면처리법은 물론, 안면의 각도나 시선이 멈춘 곳까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3] 눈가의 주름, 팔자주름, 뺨 등에 잔붓질을 가하여 얼굴에 입체감을 주고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강세황 초상(단령본) | 초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 강세황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 이명기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조선 정조 | 강세황 초상(단령본) 제작 | A는 B를 명령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제작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계추기사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계추기사 | 강세황 초상(단령본) 제작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강관 | 계추기사 | A는 B가 썼다 | A dcterms:creator B |
강세황 | 강관 | A는 아들 B를 두었다 | A ekc:hasSon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 강세황 초상(단령본) 조선 정조 어제찬문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조선 정조 어제찬문 | 조선 정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조선 정조 어제찬문 | 조윤형 | A는 B가 썼다 | A dcterms:creator B |
표암유고 | 강세황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강세황 | 표암유고 | A는 B가 썼다 | A dcterms:creator B |
강세황 초상(단령본) | 강세황 자화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강세황 | 강세황 자화상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좌안팔분면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전신좌상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오사모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단령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쌍학흉배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삽금대 | 강세황 초상(단령본)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783년 | 강세황 초상(단령본)이 제작되었다. |
1975년 5월 16일 | 강세황 초상(단령본)이 보물 제590호로 지정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238510 | 126.9804700 | 강세황 초상(단령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331쪽.
- ↑ 강세황(姜世晃), 「표옹자지豹翁自誌」, 『표암유고(豹菴遺稿)』, 권6.
-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눌와, 2007, 428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웹 자원
- 김양균, "강세황 초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양균, "강세황 초상",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국립중앙박물관, 2013.
- 단행본
- 변영섭, 『표암 강세황 회화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