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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8일 (월) 23:33 판
첩지 (貼只) |
|
대표명칭 | 첩지 |
---|---|
한자표기 | 貼只 |
구분 | 수식 |
착용신분 |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 |
착용성별 | 여성 |
목차
정의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 등 조선시대 여성들이 평상시나 의례가 있을 때 앞 가르마 위에 얹어 치장하던 장신구이다.[1]
내용
앞부분의 장식만 달랐을 뿐 7~8㎝ 길이의 몸체는 모두 수평을 이루고 꼬리부분만 날씬하게 위로 향한 모양이다. 첩지만으로는 사용할 수 없으므로 받침대 위에 얹고, 받침대 양쪽으로 다리를 붙여 사용한다. 받침대 중앙에 올려놓은 첩지는 앞부분과 중앙, 꼬리부분 등 세곳을 다홍색 실로 5~7번정도 떠서 고정시키며, 받침대는 검정색 천으로 싸고 다리는 양쪽 끝부분만 조금 땋아 댕기를 드려놓아 끝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2] 착용방법은 첩지를 가르마 위에 얹은 뒤 양쪽의 다리를 원래 머리와 함께 빗어내려 쪽을 지어 고정한다. 첩지는 예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쓴 족두리나 화관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하는 역할도 한다. 황후는 도금 용첩지, 왕비는 도금 봉첩지를 착용했다. 내명부나 외명부는 품계에 따라 도금이나 흑색 무소뿔로 만든 개구리 첩지를 착용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황후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비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비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빈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내명부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외명부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궁녀 | 첩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첩지 | 다리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91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91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41쪽.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소현, 「조선후기 왕실여성의 관례복식 연구」, 『服飾』 60권 5호, 2010.
- 김아람,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金正子, 「우리나라 女性의 髮樣에 대한 硏究 - 文獻과 遺物을 中心으로-」, 『服飾』6권, 한국복식학회, 1982.
- 박영미, 「조선 후기 가체 유행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박정균, 「조선시대 여인의 가체금지령 전ㆍ후 신분별 머리 모양분석-드라마 왕과 나, 이산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朴貞植, 「朝鮮時代의 女子髮樣考察-中·後期操作方法-」, 『대한가정학회지』 제21권 3호, 1983.
- 宋昇姬, 「가체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여성의 머리장식 연구 –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李映周, 「조선시대 加髢변화에 관한 연구」,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 이은주, 「19세기 조선 왕실 여성의 머리모양」, 『服飾』 58권 3호, 2008.
- 임영자ㆍ조미영, 「조선후기 기녀의 머리형태가 일반여성의 머리 형태에 미친 영향」, 『服飾』 54권 3호, 2004.
- 張暎淳, 「朝鮮時代 以來 女性의 머리型態變遷에 關한 史的 考察」,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최경순, 「조선조 加髢논의와 그 요인」, 『복식문화연구』 4권 1호, 1996.
- 崔民植, 「조선후기 내명부의 머리 양식 및 고찰」,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