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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3일 (금) 19:15 판

광산김씨 상언
영문명칭 An appeal to king Yeongjo from Kim of Gwangsan, a wife of Yi Yimyeong
작자 광산김씨
간행시기 1726년(영조3)
소장처 국립한글박물관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79.0×153.5㎝
판본 필사본
수량 1장
표기문자 한글



개요

1727년 10월에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의 처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영조에게 손자 이봉상(李鳳祥)과 시동생 이익명(李益命)의 구명을 호소하며 올린 상언(上言)이다.


내용

1727년 10월에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의 처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영조에게 손자 이봉상(李鳳祥)과 시동생 이익명(李益命)의 구명을 호소하며 올린 상언(上言)이다. 광산김씨는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딸이며, 남편 이이명신임옥사(辛壬獄事) 때 목호룡의 고변으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김창집·이건명·조태채와 함께 사형을 당하였다.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집권하여 이이명이 복권되었지만,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다시 소론이 집권하자 신임옥사 때 익사한 것으로 위장하고 도망간 이봉상은 다시 투옥되었다. 또한 이이명의 동생 이익명이봉상의 피신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이에 광산김씨영조에게 상언을 올려 이봉상을 피신시킨 것은 자신이 한 일이므로 손자 이봉상과 시동생 이익명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1]


관련항목

중심 연결정보 대상
광산김씨 상언 편찬자 광산김씨
광산김씨 상언 인물 이이명
광산김씨 상언 인물 영조
광산김씨 상언 인물 이봉상
광산김씨 상언 인물 이익명
광산김씨 상언 인물 김창집
광산김씨 상언 인물 이건명
광산김씨 상언 인물 조태채
광산김씨 상언 그룹 노론
광산김씨 상언 그룹 소론
광산김씨 상언 사건 신임옥사
광산김씨 상언 사건 정미환국
광산김씨 상언 소장처 국립한글박물관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광산김씨 상언 간행년 1726년
광산김씨 상언 간행년 영조3년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광산김씨 상언 소장처 국립한글박물관 37.521177 126.980935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