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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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일 (목) 09:16 판


청금복(靑衿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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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청금복(靑衿服)
이칭별칭 청금(靑衿), 청금단령(靑衿團領), 청금원령(靑衿圓領), 청단령(靑團領), 청삼(靑衫)
착용신분 유생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시대 유생복, 유학생(儒學生)의 옷[1]

기원

『시경』의 "靑靑子衿" 즉, "푸른 옷깃의 그대여"라는 시구의 첫 문장에서 유래된 것으로 각주에 금(衿)은 영(領) 즉 옷깃이라 하였다. 성균관의 학생복인 청금(靑衿)이라는 명칭은 당(唐)에서 전래된 것으로 국학(國學)의 학생복인 청금복(靑衿服)에서 유래되었으며, 복식 형태는 명(明) 국자감의 청원령(靑圓領)[2]에서 기인하였다.[3]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내용

1) 변천 과정[5]

  • 1485년 『경국대전』에 명문화되어 있는 성균관 제학생도 학생복의 기본 구성은 복건형태의 연건후수(軟巾後垂)에 청금단령(靑衿團領)이었음.[6]
  • 하급 아전인 서리(書吏)의 의관과 유사하다고 하여 청금복 착용을 기피하게 됨.
  • 관외에서는 사복(私服)인 직령(直領)을 착용하였으며, 18세기 후반 직령과 도포(道袍)의 착용이 혼재하다가 이후 도포로 고착화됨. 이는 18세기 풍속화와 기록화 등에 그려진 유생의 직령과 도포의 착용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음.
  • 1746년(영조 22) 난삼(襴衫)을 생원진사방방의(生員進士放榜儀) 제생(諸生)들의 착용 복식으로 개정.(청금복과 난삼으로 이분화[7])
  • 1884년 고종의 갑신의제개혁의 후속 조치인 사복변제절목(私服變制節目)에서 유생의 재복(齋服)은 구제(舊制)를 유지하되 사복(私服)은 착수의(窄袖衣)로 규정함.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청금복 은 ~과 한 벌이다 연두건(軟頭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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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금복 관계 관련노드명
청금복 관계 관련노드명

참고문헌

유교넷 유교용어사전:청금복(靑衿服)

주석

  1. ↑ 한국복식사전:청금복
  2. ↑ 태종실록 21권, 태종 11년 6월 12일 신축 3번째기사:중국의 제도에 따라 성균관과 오부 유생들이 처음으로 청금을 입다
  3. ↑ 정희정(2016) 「조선시대 왕세자 입학례 절차와 복식 연구」.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p. 80.
  4. ↑ 정희정(2016) 「조선시대 왕세자 입학례 절차와 복식 연구」.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p. 90~91.
  5. ↑ 정희정(2016) 「조선시대 왕세자 입학례 절차와 복식 연구」.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6. ↑ 『경국대전』 禮典 儀章條 "諸學生徒 緇布巾(在學) 團領(儒學用 靑衿) 條兒"
  7. ↑ 정희정(2016), 1788년 『춘관통고』에서 학생의 청금복과 방방의에서 착용하는 난삼이 공존하고 있어 청금복과 난삼은 다른 복제(服制)로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