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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도갑사 수미왕사진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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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일 (금) 20:04 판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진영
(靈巖 道岬寺 守眉王師眞影)
대표명칭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진영
한자표기 靈巖 道岬寺 守眉王師眞影
시대 조선시대
지정번호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77호
지정일 1990년 12월 5일
소장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수량 1매
관련인물 수미(守眉)
관련장소 영암 도갑사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道岬寺)에 있는 조선시대의 승려 수미왕사(守眉王師)의 초상화.[1]

내용

1990년 12월 5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의 왕사로서 15세기 중엽에 도갑사를 크게 중창한 승려이다. 영암 출신으로 13세 때 도갑사에서 출가하여 63세에 입적하였고 속리산 법주사에서 경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도갑사에 돌아와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세조는 그에게 묘각화상이라는 호를 내렸다.

원래 수미왕사의 초상화는 1633년(인조 11)에 제작된 것으로, 그의 비를 건립한 시기와 같다. 현재 도갑사에 소장되어 있는 이 수미왕사상은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였는데 조선 후기 불화를 그리는 안료를 사용하여 불교 회화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약간 왼쪽을 향한 자세로 보리수를 들고 두 다리를 결가부좌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화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수미왕사진영’이라고 씌어 있다.

이 초상화는 함께 모셔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6호 도선(道詵)국사진영과 인물의 묘사와 의습 처리, 화문석 등 여러 가지의 표현 형식이 비슷하여 19세기 초반에 도선국사진영과 함께 옮겨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


조선후기. 비단바탕에 채색.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도갑사 수미왕사비(守眉王師碑,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52호)에 의하면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 때의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여 도갑사, 법주사 등으로 돌아다니며 경전 공부를 하다가 다시 도갑사로 들어와 황폐한 절을 중창하였고, 불경언해기구인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 세조는 그에게 묘각(妙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하였다고 한다.

이 진영은 도갑사에 함께 봉안되어 있는 도선국사진영(道詵國師眞影,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6호))과 거의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도선국사상이 우향(右向)하고 있는데 반하여 수미왕사진영은 좌향(左向)한 모습을 그린 점이 다르다.

스님은 의자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두어 무릎과 수평으로 불자(拂子)를 잡고있는 모습인데, 짙은 청색의 가사를 걸치고 겉에 붉은 장삼을 입고 있다. 왼쪽 어깨부분에는 가사를 묶은 금구장식이 표현되었으며,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의자 위에서 정연하게 마무리되었다.

의자 아래에는 화문석이 깔려있고 화문석에는 다양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잔잔하게 묘사되었다. 황색의 바탕에 녹색과 적색, 청색이 주조색을 이루며, 얼굴과 손은 호분으로 칠하였으며 얼굴의 묘사가 섬세한 편이다.

화면의 왼쪽(향우)에는 주칠(朱漆)의 화기(畵記)란을 만들어 ‘守眉王師眞影’이라고 적어놓았다. 이 작품은 도선국사진영과 거의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제작연대는 도선국사진영과 같은 19세기경의 작품으로 생각된다.[민백]

조선 세조 대의 승려인 수미왕사의 초상화이다.

수미는 세조의 왕사(王師)이며 15세기 중엽에 도갑사를 크게 중창한 승려로서, 당시 선종판사가 되어 황폐한 불교를 부흥시켰다.

초상화에는 약간 왼쪽을 향한 자세에 불교용구인 불수를 들고 두 다리를 가부좌하여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담았으며, 화폭의 오른쪽 윗부분에 ‘수미왕사진영’이라는 그림제목을 써 놓았다. 조선 인조 11년(1633)에 제작된 것으로 전하는데 그의 비를 건립한 시기와 같다.

함께 보존되어 있는 도선국사진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6호)과 인물의 표현법이나 의복의 음영처리 기법이 같다. 화문석 돗자리의 무늬 등 여러 가지 표현형식이 또한 비슷하여 19세기 초반에 도선의 초상화와 함께 옮겨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고 조선 후기에 불화를 그리던 물감을 사용하는 등 불교 회화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문재] 「도갑사 수미 왕사 진영」은 수미 왕사가 군청색의 장삼과 붉은 가사를 걸친 모습으로 왼쪽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얼굴에는 흰색에 가까운 살색의 안료를 칠하고 붉은 색의 부드러운 선으로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를 그렸다. 네모에 가까운 둥근 얼굴형에 선한 눈매와 둥근 코, 살짝 올라간 입 꼬리 등이 온화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앉아 있는 방향만 다를 뿐 전체적으로 「도갑사 도선 국사 진영」과 비슷한 표현법을 보인다. 특히 얼굴의 표현이나 의자 등받이의 꽃 장식 띠 문양, 의자 아래 화문석의 표현이 유사하다. 다만 팔에 걸쳐져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이 의자 위에서 정연하게 마무리된 것이나, 손에 든 불자의 표현 등에서는 차별을 두었다.[향문]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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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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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김정희, "도갑사수미왕사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