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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로부터 4년째 되는 해 8월 24일에 곧 입적하려 함에 문인들에게 비석과 탑을 세우지 말 것을 당부하고 곧 목용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가부좌를 하고 반듯하게 앉았다. 소주(紹珠)가 앞으로 나와서 ‘스승께서는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스님은 ‘마지막의 하나를 붙이니 너희들은 나누어 갖도록 하라(末後一著汝等有分薦取)’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곧바로 돌아가시니 세상의 나이로는 65세이고, 승려로서의 나이는 58세이었다. 태어난 것은 첫 번째 지원(前至元 : 원나라 世祖의 연호, 1264~1294년까지 사용) 12년인 을해년(충렬왕 1, 1275) 초하루가 을유(乙酉)인 달의 신유(辛酉)일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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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9일 (화) 10:22 판
충감(沖鑑) | |
대표명칭 | 충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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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沖鑑 |
생몰년 | 1274년(원종 15)-1338년(충숙왕 복위 7) |
시호 | 원명(圓明) |
호 | 설봉(雪峰) |
휘 | 충감(冲鑑) |
탑호 | 원소(圓炤) |
자 | 절조(絶照) |
승탑비 |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 |
목차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충감의 성은 김씨(金氏), 호는 설봉(雪峰), 자는 절조(絶照)이다.
국사는 휘(諱)는 충감(沖鑑)이요, 자(字)는 절조(絶照)이며, 호는 설봉(雪峯)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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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가수행
7세 때 부모의 명을 받고 선원사(禪源寺)에 출가하여 자오국사(慈悟國師)의 제자가 되었다. 1292년(충렬왕 18) 승과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올랐다.
구법유학
명예나 문자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도를 닦아 얻는 과보를 중시하여 각지를 다니면서 도를 구하다가 원나라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도행(道行)이 높은 철산(鐵山)의 경선사(瓊禪師)를 만난 뒤 함께 귀국하여 3년 동안 제자의 예로 모셨다.
귀국 및 활동
그 뒤 용천사(龍泉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백장(百丈)의 선문청규(禪門淸規)를 취하여 이를 실행하였으며, 뒤에 선원사 주지가 되어 15년 동안 크게 종지(宗旨)를 선양하였다. 1334년부터 보광사(普光寺)에 머무르며 절을 중건하였다.
입적
1338년 8월 문인들에게 비를 세우거나 탑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跏趺坐)한 채 입적하였다. 나이 64세, 승랍 58세였다. 국사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원명(圓明)이다.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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