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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화) 13:52 판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대표명칭 분충서난록
한자표기 奮忠紓難錄
저자 유정(惟政)
편자 남붕(南鵬), 신유한(申維翰)
간행시기 1739년(영조 15)
간행지 밀양 표충사
시대 조선
수량 7권
판본 목판본
소장처 밀양 표충사



정의

임진왜란 때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泗溟大師 惟政)의 일기와 상소문(上疏文), 기타 사적을 수록한 책.[1]

내용

유정(惟政)의 5대 법손(法孫)인 남붕(南鵬)이 전하여오던 유정의 유고를 이 시기에 새로 출간하였다. 원래는 '골계도(滑稽圖)'라는 제명(題名)이었던 것을, 편자인 신유한(申維翰)이 평석을 가하고 체재를 갖추면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2]

『분충서난록』은 임진왜란에 관한 종합적 보고서는 아니지만, 전시외교(戰時外交)의 허실, 그리고 적정의 탐지 등을 상세하게 기술한 점 등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공경대부를 비롯한 일반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견해와 유정의 폭 넓은 교유를 밝힐 수 있는 시사성을 주고 있다. 유정이 남긴 문헌으로는 문집 4권과 『분충서난록』이 있을 따름인데, 문집에는 대개 시문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반면 『분충서난록』에는 비록 단편적인 언급이기는 하지만, 유정의 승군대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당시의 사회·민심·외교·경제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며, 가장 신빙성 있는 육전(陸戰)의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 등에 소장되어 있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분충서난록 유정 A는 B가 저술하였다
분충서난록 남붕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온톨로지에 없음: 문헌-[간행되었다]->인물
분충서난록 신유한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온톨로지에 없음: 문헌-[간행되었다]->인물
분충서난록 밀양 표충사 A는 B에 소장되었다 *온톨로지에 없음: 문헌-[소장되었다]->장소
분충서난록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있다
분충서난록 가토 기요마사 A는 B와 관련있다

주석

  1. "분충서난록",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분충서난록",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정병조, "분충서난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분충서난록",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정병조, "분충서난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