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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원삼(圓衫) | |대표명칭= 원삼(圓衫) | ||
|이칭별칭= 단삼(團衫), 대수(大袖), 대의(大衣), 장오자(長襖子) | |이칭별칭= 단삼(團衫), 대수(大袖), 대의(大衣), 장오자(長襖子) | ||
− | |착용시대= 조선 | + | |착용시대= 조선, 일제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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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성별= 여성 | |착용성별= 여성 |
2017년 1월 31일 (화) 17:27 판
원삼(圓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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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원삼(圓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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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단삼(團衫), 대수(大袖), 대의(大衣), 장오자(長襖子) |
착용신분 | 왕실, 궁중, 일반 백성 |
착용성별 | 여성 |
목차
정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 예복의 하나.
기원
여성이 착용한 단령에서 맞깃형태로 변천.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 왕실의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내외명부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착용범위가 넓고 조선시대 말에는 혼례복으로도 많이 입혀짐.
- 조선 말기에 원삼은 비(妃), 빈(嬪)과 내외명부(內外命婦) 및 황후까지 착용- 황후는 황원삼(黃圓衫), 왕비는 홍원삼(紅圓衫), 공주와 반가 여인들은 녹원삼(綠圓衫)으로 신분에 따라 색을 구별.
내용
1) 기본 형태
- 깃이 서로 마주하는 대금형(對衿形)의 맞깃 혹은 배자깃으로 불리는 깃이 달려있어 앞자락이 겹치지 않음.
- 길이는 뒷길이 앞길보다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며, 바닥까지 이르는 긴 포의 형태.
- 겨드랑이 아래로 길게 트임이 있고 섶과 무가 없음.
- 두리소매 형태의 넓은 소매가 달렸고, 소매 끝에는 색동과 백색의 한삼(汗衫)을 연결.
- 여밈 방식은 고름이나 매듭단추가 달렸고, 길이가 매우 긴 별도의 대(帶)를 둘러 착용.
3) 시대별 특징
- 15~16세기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1]
- 품이 대체로 넉넉하거나 크게 제작해 남성 단령은 품이 대부분 50~70cm인 반면 이 시기의 원삼은 여자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80~102cm까지 품이 매우 넓은 유물 존재. - 소매모양이 직배래의 통수 형태로 한삼이 달렸거나 달았던 흔적이 발견: 한삼을 달기 위한 의도로 보여 예복의 용도를 뒷받침하는 증거, 남성 단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 - 이시기 출토 유물의 절반 가량 흉배가 부착 - 대대가 함께 출토, 도련에 선단이 둘러져 있음.
- 17세기 초중반의 원삼[2]
- 변화가 심한 시기로 특별히 17세기 전반기에는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이 전형적인 원삼으로 변하는 과정: 단령과 원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형태가 나타남. - 도련의 모양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뀜. - 직배래의 통수형태였던 소매모양에 변화가 생기며 색동이 처음 등장. - 앞길에만 무가 있으며 뒷길은 무가 없이 안단을 둘러 원삼의 도련과 같은 형태로의 전환이 시작. - 홑옷 유지. - 깃이 교임의 단령 깃에서 점점 둥근 깃의 대금형 깃으로의 변화가 시작. - 원삼의 대와 유사한 대가 출토되었고, 흉배가 부착된 형태가 감소.
- 17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원삼.[3]
- 깃 모양이 대금형의 원삼 깃으로 변화. - 예외가 있지만 두리소매가 등장하며 두 줄 색동과 한삼이 달린 형태로 변해가는 추세. - 도련선이 당의의 곡선과 같은 형태로 변화. - 전단후장(前短後長)의 강화. - 겹원삼이 등장.
- 19~20세기 원삼[4]
- 조선 후기로 가면서 원삼은 궁중 여성 및 사대부 부인의 예복이자 서민들의 혼례복으로 형태적인 이분화를 이루며 착용. - <가례도감의궤>에 의하면 왕비용 원삼은 없고 왕세자빈과 왕세손비의 녹원삼이 있으며, 실제로 왕자비나 공주‧외명부와 같은 높은 신분에서는 녹원삼을 예복으로 입음.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왕비를 황후로 격상시켜 부르며 황원삼을 입도록 하고 황태자비는 홍원삼을 그 이하의 신분에서는 녹원삼을 입도록 함. - 민가의 혼례용 원삼은 왕실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직금과 금박으로 장식한 궁중원삼과 달리 민가에서는 금장식이 배제되고 대신 소매에 색동의 수가 많아지며 직선미가 돋보이는 단순한 형태. - 궁중원삼은 전단후장형으로 길이가 매우 긴 특징을 보이며, 민가의 원삼은 길이가 짧은 편. - 궁중원삼은 소매가 매우 넓고 길며 두 줄의 색동과 한삼이 달리는 반면 민가의 원삼은 색동의 수가 정해진 양식이 없이 많이 달린다. - 원삼의 옆선과 도련의 형태가 점차 직선형으로 변화. - 겹원삼이 정착, 흑원삼만 홑. - 민가 원삼의 특징으로 길과는 다른 색의 깃과 고름을 달음.
동궁비 홍원삼(앞면). 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청(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동궁비 홍원삼(뒷면). 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청(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전 황후 황원삼(앞면). 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청(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
전 황후 황원삼(뒷면). 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청(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