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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말기의 장군. 김유신 소정방이 이끄는 5만여 병력의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출천하여 황산벌(黃山 : 지금의 충청남도 連山)에서 신라 김유신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 백제 말기의 장군. 김유신 소정방이 이끄는 5만여 병력의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출천하여 황산벌(黃山 : 지금의 충청남도 連山)에서 신라 김유신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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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은 죽기를 각오한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출전하면서, 이미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 '살아서 적의 노비(奴婢)가 됨은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하여 자기의 처자를 모두 죽여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 계백은 죽기를 각오한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출전하면서, 이미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 '살아서 적의 노비(奴婢)가 됨은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하여 자기의 처자를 모두 죽여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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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7일 (월) 23:49 판
정의
백제 말기의 장군. 김유신 소정방이 이끄는 5만여 병력의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출천하여 황산벌(黃山 : 지금의 충청남도 連山)에서 신라 김유신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설명
계백은 죽기를 각오한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출전하면서, 이미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 '살아서 적의 노비(奴婢)가 됨은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하여 자기의 처자를 모두 죽여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계백은 장군(將軍)이 되어 죽음을 각오한 5천 명을 뽑아 이들을 막고자 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사람으로서 당과 신라의 대규모 병력을 맞게 되었으니, 국가의 존망(存亡)을 알 수 없다. 내 처와 자식들이 잡혀 노비(奴婢)가 될까 염려된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죽어서 흔쾌한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처자식을 모두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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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국사기 열전 제7 계백", |
황산벌에 이르러 3개의 군영을 설치하고 군사들에게 맹세하기를 "옛날에 구천(句踐)은 5,000명의 군사로써 오(吳)나라 70만 대군을 쳐부쉈으니 오늘날 마땅히 각자가 있는 힘을 다하여 최후의 결판을 내자"하고,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5만의 군사를 맞아 네 차례나 그들을 격파하였다.
황산의 벌판에 이르러 3개의 군영(軍營)을 설치하였다. 신라 군대를 만나 전투를 시작하려고 하자, 계백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며
"지난 날 구천(句踐)은 5천 명으로 오(吳)나라 70만의 무리를 격파하였다. 지금 오늘 마땅히 각자 힘써 싸워 승리함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자."고 하였다. 드디어 격렬히 싸우니, 백제의 군사로서 일당천(一當千)이 아닌 자가 없었다. 신라군은 이에 퇴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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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국사기 열전 제7 계백", |
그러나 반굴(盤屈)·관창(官昌) 등 어린 화랑의 전사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대군과 대적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였다.결국, 백제군은 패하고 계백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부여의 의열사(義烈祠), 연산의 충곡서원에 제향되었다.
시각자료
사진
영상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계백 | 황산벌싸움 | A은 B에 참가하였다 | 660년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660년 | 계백은 황산벌싸움에 참가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6.195687 | 127.180677 | 계백은 황산벌싸움에 참가하였다 |
36.198371 | 127.177168 | 계백은 충곡서원에 배향되었다 |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