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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丁亥年) 겨울 선불장(選佛場)에 나아가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그 후 포산(包山) 보당암(寶幢庵)에 주석하면서 마음을 선관(禪觀)에 두었다. | |정해년(丁亥年) 겨울 선불장(選佛場)에 나아가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그 후 포산(包山) 보당암(寶幢庵)에 주석하면서 마음을 선관(禪觀)에 두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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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신년(丙申年) 가을에 병란이 있어 스님께서 피할 곳을 찾고자 하여 문수(文殊)의 오자주(五字呪)를 염송하면서 감응을 기원하였더니, 홀연히 벽 사이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 "무주(無住)에 머물러라"라고 하였다. 다음해 여름에 다시 이 포산 묘문암(妙門庵)에 머물렀다. 암자 북쪽에 무주(無住)라는 난야(蘭若)가 있었다. 대사가 곧 이전의 문수보살의 기별을 깨닫고 그 암자에 머물면서 항상 '중생계가 줄지 않고, 불계(佛界)가 늘지 않는다'라는 화두를 참구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활짝 의문이 풀리면서 크게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삼계(三界)가 환몽(幻夢)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에 작은 터럭만큼의 장애도 없음을 보았다"라고 하였다. 이 해에 삼중대사(三重大師)를 제수받고, 병오년(丙午年)에 선사(禪師)를 더하였다. | ||
+ | |출처=조명제, "인각사 보각국사비", 『한국금석문집성』제25권, 한국국학진흥원, 2014, 17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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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 (토) 15:39 판
일연(一然) | |
대표명칭 | 일연 |
---|---|
한자 | 一然 |
생몰년 | 1206년(희종 2)-1289년(충렬왕 15) |
시호 | 보각(普覺) |
호 | 무극(無極), 목암(睦庵) |
법호 | 견명(見明), 일연(一然) |
탑호 | 정조(靜照) |
자 | 회연(晦然), 일연(一然) |
성씨 | 김씨 |
본관 | 경주(慶州) |
출신지 | 경상북도 경산 |
승탑 |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
승탑비 |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비 |
목차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일연은 1206년(희종 2)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에서 아버지 김언필(金彦弼)과 어머니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1]
출가수행
1214년(고종 1) 해양(海陽)에 있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익혔고, 1219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여러 곳의 선문(禪門)을 방문하면서 수행하였다.[2]
활동
일연은 1227년(고종 14) 승과(僧科)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에 급제하였다. 그 뒤 비슬산(琵瑟山)의 보당암(寶幢庵)에서 수년 동안 참선에 몰두하였다.[3]
정해년(丁亥年) 겨울 선불장(選佛場)에 나아가 상상과(上上科)로 합격하였다. 그 후 포산(包山) 보당암(寶幢庵)에 주석하면서 마음을 선관(禪觀)에 두었다. | ||
출처: 조명제, "인각사 보각국사비", 『한국금석문집성』제25권, 한국국학진흥원, 2014, 17쪽. |
일연은 1236년(고종 23) 몽고군의 침입을 피해 거처할 곳을 찾다가 무주암(無住庵)에 머물라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계시를 받고, 1237년 무주암으로 옮겼다. 거기서 '현상계(現象界)가 줄어들지도 않고 본체계(本體界)가 늘어나지도 않는다(生界不減 佛界不增)'는 말을 화두로 삼아 정진하다가 마침내 도를 깨달았다. 이 해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1246년(고종 33)에 선사(禪師)가 되었다.[4]
입적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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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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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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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 이종문, "일연",
『디지털청도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상현, "일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1년 12월 21일. - ↑ 김상현, "일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1년 12월 21일. - ↑ 이종문, "일연",
『디지털청도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