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장"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26번째 줄: | 26번째 줄: | ||
그 뒤 춘계(春溪)와 천묵(天默)으로부터 내전과 외전을 배우고, 당대의 대강사인 유일(有一)과 정일(鼎馹)로부터 불교공부를 계속하였다.<br/> | 그 뒤 춘계(春溪)와 천묵(天默)으로부터 내전과 외전을 배우고, 당대의 대강사인 유일(有一)과 정일(鼎馹)로부터 불교공부를 계속하였다.<br/> | ||
27세 때 정암(晶巖)의 밑에서 선리를 터득하여 문신(文信)의 적손(嫡孫)이 되었고30세 때 [[두륜대회]](頭輪大會 : 두륜산내의 승려대회)를 주도하여 선(禪)·교(敎) 양종의 거목으로 인정받았다.<br/> | 27세 때 정암(晶巖)의 밑에서 선리를 터득하여 문신(文信)의 적손(嫡孫)이 되었고30세 때 [[두륜대회]](頭輪大會 : 두륜산내의 승려대회)를 주도하여 선(禪)·교(敎) 양종의 거목으로 인정받았다.<br/> | ||
− | 1801년(순조 1) 전라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과 깊은 교우관계를 맺어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며 교류하였다.<br/> | + | 1801년(순조 1) 전라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과 깊은 교우관계를 맺어 [[다산초당]]과 [[강진 백련사]]를 오가며 교류하였다.<br/> |
[[정약용]]은 그의 비명(碑銘)에서, “『논어』 또는 율려(律呂)·성리(性理)의 깊은 뜻을 잘 알고 있어 유학의 대가나 다름없었다.”고 칭찬하였다.<br/> | [[정약용]]은 그의 비명(碑銘)에서, “『논어』 또는 율려(律呂)·성리(性理)의 깊은 뜻을 잘 알고 있어 유학의 대가나 다름없었다.”고 칭찬하였다.<br/> | ||
1811년 가을 [[두륜산]](頭輪山) 북암(北庵)에서 입적하였다. 제자에 색성(賾性)·자굉(慈宏)·응언(應彦)·법훈(法訓) 등이 있었으며, 모두 불교계의 거장이었다. 저서에는 『[[아암집]]』 3권이 있다. | 1811년 가을 [[두륜산]](頭輪山) 북암(北庵)에서 입적하였다. 제자에 색성(賾性)·자굉(慈宏)·응언(應彦)·법훈(法訓) 등이 있었으며, 모두 불교계의 거장이었다. 저서에는 『[[아암집]]』 3권이 있다. | ||
42번째 줄: | 42번째 줄: | ||
| [[의순]] || {{PAGENAME}} || A는 B의 제자이다 || | | [[의순]] || {{PAGENAME}} || A는 B의 제자이다 || | ||
|- | |- | ||
− | | {{PAGENAME}} || [[백련사]]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 + | | {{PAGENAME}} || [[강진 백련사]]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
|- | |- | ||
| {{PAGENAME}} || [[대둔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 {{PAGENAME}} || [[대둔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
73번째 줄: | 73번째 줄: | ||
|34.578880 || 126.746931|| [[다산초당]]은 {{PAGENAME}}과 관련이 있다 | |34.578880 || 126.746931|| [[다산초당]]은 {{PAGENAME}}과 관련이 있다 | ||
|- | |- | ||
− | |34.587811 || 126.748251|| [[백련사]]는 {{PAGENAME}}의 수행지였다 | + | |34.587811 || 126.748251|| [[강진 백련사]]는 {{PAGENAME}}의 수행지였다 |
|- | |- | ||
|34.479307 || 126.619390 ||[[두륜산]]은 {{PAGENAME}}의 사망지이다 | |34.479307 || 126.619390 ||[[두륜산]]은 {{PAGENAME}}의 사망지이다 |
2017년 7월 6일 (목) 16:45 판
정의
조선 후기의 승려. 성은 김씨(金氏). 자는 무진(無盡), 호는 연파(蓮坡) 또는 아암(兒庵). 속명은 팔득(八得). 혜장(惠藏)은 법명이다.
내용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해남 대둔사(大芚寺)의 월송화상(月松和尙)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춘계(春溪)와 천묵(天默)으로부터 내전과 외전을 배우고, 당대의 대강사인 유일(有一)과 정일(鼎馹)로부터 불교공부를 계속하였다.
27세 때 정암(晶巖)의 밑에서 선리를 터득하여 문신(文信)의 적손(嫡孫)이 되었고30세 때 두륜대회(頭輪大會 : 두륜산내의 승려대회)를 주도하여 선(禪)·교(敎) 양종의 거목으로 인정받았다.
1801년(순조 1) 전라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과 깊은 교우관계를 맺어 다산초당과 강진 백련사를 오가며 교류하였다.
정약용은 그의 비명(碑銘)에서, “『논어』 또는 율려(律呂)·성리(性理)의 깊은 뜻을 잘 알고 있어 유학의 대가나 다름없었다.”고 칭찬하였다.
1811년 가을 두륜산(頭輪山) 북암(北庵)에서 입적하였다. 제자에 색성(賾性)·자굉(慈宏)·응언(應彦)·법훈(法訓) 등이 있었으며, 모두 불교계의 거장이었다. 저서에는 『아암집』 3권이 있다.
시각자료
사진
영상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혜장 | 정약용 | A는 B와 교유하였다 | |
의순 | 혜장 | A는 B의 제자이다 | |
혜장 | 강진 백련사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
혜장 | 대둔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혜장 | 두륜대회 | A는 B를 지휘하였다 | 1801년 |
혜장 | 아암집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혜장 | 두륜산 | A는 B에서 죽었다 | 1811년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01년 | 혜장이 두륜대회를 주도하였다. |
1801년 | 혜장이 정약용과 조우하였다. |
1811년 | 혜장이 두륜산에서 입적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4.7406953 | 126.7047464 | 설록다원강진은 혜장과 관련이 있다 |
34.578880 | 126.746931 | 다산초당은 혜장과 관련이 있다 |
34.587811 | 126.748251 | 강진 백련사는 혜장의 수행지였다 |
34.479307 | 126.619390 | 두륜산은 혜장의 사망지이다 |
참고문헌
- "혜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