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탑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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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HST Eokjeongsaji Daeji stele-1.jpg|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파일:BHST Eokjeongsaji Daeji stele-1.jpg|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파일:BHST Jeongtosaji Beopgyeong stele.jpg|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파일:BHST Jeongtosaji Beopgyeong stele.jpg|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2017년 6월 26일 (월) 14:48 판

틀:개념정보상세

{{개념정보
|사진=BHST_Stele.png
|사진출처=
|대표명칭=탑비
|한자표기=塔碑
|영문명칭=
|이칭=부도비(浮屠碑)
|유형=
|관련개념=[[승탑|승탑(僧塔)]], [[귀부|귀부(龜趺)]], [[이수|이수(螭首)]], [[제액|제액(題額)]]
}}


정의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1]

내용

개요

탑비는 승탑(僧塔)과 함께 조성되며,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일생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2] 탑비의 주인인 승려의 덕(德)을 추모하기 위해 평생의 이력을 낱낱이 적어 널리 알리게 되며, 종이에 쓴 것은 쉽게 없어지리라는 생각에 주로 금석(金石)에 새겨 세워지게 된다.[3]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고려시대에는 역대 국왕이 고승(高僧)들을 존경하여 그들이 사망하면 장사를 후하게 치르고, 아울러 시호(諡號)와 탑명(塔名)을 내리면서 당시를 대표하는 문신과 명필에게 비문을 짓고 쓰게 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이전과 같이 국왕이 탑명을 내리는 국가적 차원의 조성은 매우 드물었지만, 부도와 탑비의 조성에 대한 전통은 꾸준히 지속되었다.[4]

형식

탑비는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과 비신받침 및 옥개석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신받침은 대개 거북모양으로 만드는데 이를 귀부(龜趺)라고 한다. 거북의 등 위에는 비석 받침구멍을 파는데 이를 비좌(碑座)라고 한다. 비신은 얇은 판석으로 만들며 양쪽에 비문을 새긴다. 비신 위에는 옥개석을 올리는데 이를 이수(螭首)라고 한다. 이수는 보통 구름과 용이 얽혀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며 이수 전면 중앙에는 편액처럼 면을 다듬어 탑비 주인의 이름을 새겼다. 이 부분을 제액(題額)이라고 한다.[5]

탑비에 거북과 용을 표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중국 당나라 비의 모방이라는 견해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四神圖) 중 현무(玄武)에서 기원했다는 견해가 있다. 거북과 용은 장수의 상징인 동시에 물, 하늘, 땅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신(神)의 사자로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탑비를 구성하는 가장 하부를 거북과 용으로 형상화한 것은 비가 영원토록 전해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정상 부분인 이수에는 구름과 용을 조각하여 하늘로 승천한 탑비의 주인공을 상징한다.[6]

비문

탑비에는 일반 역사책에서 보기 어려운 고승의 일생이 기술되어 있다. 즉 출생으로부터 불문(佛門)에 들어가 활동하고 사망하기까지 일생의 행력(行歷)이 적혀 있으며, 뒤쪽에는 탑비 조성에 참여한 제자와 문도(門徒)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따라서 탑비는 고승의 학통(學統)이라든지 그를 둘러싼 당시 불교계의 여러 가지 상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7]

글씨체

탑비에 새겨진 글씨체는 일반 석비의 경우와 같이 정자체인 해서(楷書)가 주로 사용되는데, 신라하대 이후 계속해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각 시기마다 해서풍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이외에 행서(行書)를 사용하기도 하며 옛 명서가들의 필적을 모아 새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唐)태종(太宗)의 필적으로 집자한 흥법사진공대사비(940년), 통일신라 김생(金生)의 필적으로 집자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954년),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의 필적으로 집자한 인각사보각국사정조탑비(1295년) 등이 있다.[8]

시각자료

주석

  1.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선묵 혜자, 『선묵 혜자 스님과 산사에서 배우는 불교』, 연중, 2010, 416쪽.
  4.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김왕직,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동녘, 2007. 온라인 참조: "부도비",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선묵 혜자, 『선묵 혜자 스님과 산사에서 배우는 불교』, 연중, 2010, 416쪽.
  7.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김왕직,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동녘, 2007. 온라인 참조: "부도비",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선묵 혜자, 『선묵 혜자 스님과 산사에서 배우는 불교』, 연중, 2010, 415-416쪽.
  • 정병삼, 『오늘 나는 사찰에 간다』, 풀빛, 2003, 316-325쪽.
  • 조동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