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린 분재 편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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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현종5) 12월 26일에 [[유정린]](柳廷隣)이 누나인 [[윤인미]](尹仁美) 처 [[전주유씨]](全州柳氏)에게 보낸 재산의 분재와 관련된 내용의 간찰이다. 1664년 12월 22일에 [[유정린]]·[[유정주]](柳廷舟)와 사위 [[정운한]](鄭雲漢)·[[이도전]](李道全) 등 10남매는 부모인 [[유항]](柳恒)과 [[광주안씨]](廣州安氏)의 재산을 서로 화회(和會)하여 분집(分執)하였다. 이때 [[해남]]에 살고 있던 [[윤인미]]와 [[전주유씨]]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유정린]]은 부모의 재산을 분재하는 과정과 [[전주유씨]]에게 분재된 전답과 노비 등의 내역을 간찰을 통해 전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 [[전주유씨]]가 보낸 간찰에서 자신의 몫으로 분재된 전답과 노비는 부모의 제사에 사용할 것을 당부한 내용에 대하여 자세한 의견을 구하고 있다. 끝으로 여러 동생들이 서명한 화회문기(和會文記)를 함께 보낸다는 내용으로 간찰을 마치고 있다. 1664년 12월 22일에 작성된 [[유정린]] 등 10남매의 화회문기는 현재 [[해남윤씨 연동종택]]에 보관되어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76쪽.</REF> | 1664년(현종5) 12월 26일에 [[유정린]](柳廷隣)이 누나인 [[윤인미]](尹仁美) 처 [[전주유씨]](全州柳氏)에게 보낸 재산의 분재와 관련된 내용의 간찰이다. 1664년 12월 22일에 [[유정린]]·[[유정주]](柳廷舟)와 사위 [[정운한]](鄭雲漢)·[[이도전]](李道全) 등 10남매는 부모인 [[유항]](柳恒)과 [[광주안씨]](廣州安氏)의 재산을 서로 화회(和會)하여 분집(分執)하였다. 이때 [[해남]]에 살고 있던 [[윤인미]]와 [[전주유씨]]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유정린]]은 부모의 재산을 분재하는 과정과 [[전주유씨]]에게 분재된 전답과 노비 등의 내역을 간찰을 통해 전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 [[전주유씨]]가 보낸 간찰에서 자신의 몫으로 분재된 전답과 노비는 부모의 제사에 사용할 것을 당부한 내용에 대하여 자세한 의견을 구하고 있다. 끝으로 여러 동생들이 서명한 화회문기(和會文記)를 함께 보낸다는 내용으로 간찰을 마치고 있다. 1664년 12월 22일에 작성된 [[유정린]] 등 10남매의 화회문기는 현재 [[해남윤씨 연동종택]]에 보관되어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76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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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가 부모의 재산을 나눠가질 때 작성한 문서로 1664년 에 윤인미 처 전주유씨와 그녀 형제들이 부모 유항(柳恒) 부부의 재산을 서로의 협의 하에 화회분집한 문서이다. 상속 대상자는 사위 윤인미를 포함하여 적자녀 10인이다. 평균분급 원칙에 의거하여 재산을 분집하였으나, 사마시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사마별급이 추가로 주어졌다. 화회분집한 재산의 총량은 노비 152구, 논 280여 마지기, 밭 80여 日耕으로 많은 양이지만 이번 분재를 통해 10남매가 평균분급하면서 이들의 재산은 현저히 영세해졌다. 이와 같이 평균분급의 지속은 양반 가문의 재산 영세화의 계기가 되었다. 17세기 중반 全州柳氏家 재산상속의 규모와 관행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F>[http://archive.kostma.net/Inspection/insDirView.aspx?dataUCI=G002+AKS+KSM-XE.1664.4682-20101008.B003a_003_00373_XXX 1664년 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 분재기(分財記)]",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REF> | 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가 부모의 재산을 나눠가질 때 작성한 문서로 1664년 에 윤인미 처 전주유씨와 그녀 형제들이 부모 유항(柳恒) 부부의 재산을 서로의 협의 하에 화회분집한 문서이다. 상속 대상자는 사위 윤인미를 포함하여 적자녀 10인이다. 평균분급 원칙에 의거하여 재산을 분집하였으나, 사마시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사마별급이 추가로 주어졌다. 화회분집한 재산의 총량은 노비 152구, 논 280여 마지기, 밭 80여 日耕으로 많은 양이지만 이번 분재를 통해 10남매가 평균분급하면서 이들의 재산은 현저히 영세해졌다. 이와 같이 평균분급의 지속은 양반 가문의 재산 영세화의 계기가 되었다. 17세기 중반 全州柳氏家 재산상속의 규모와 관행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F>[http://archive.kostma.net/Inspection/insDirView.aspx?dataUCI=G002+AKS+KSM-XE.1664.4682-20101008.B003a_003_00373_XXX 1664년 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 분재기(分財記)]",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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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글팀_유정린_분재_편지_01.jpg | 유정린 분재 편지 | 파일:한글팀_유정린_분재_편지_01.jpg | 유정린 분재 편지 |
2017년 5월 25일 (목) 16:00 판
유정린 분재 편지 | |
영문명칭 | Yu Jeongrin’s letter to his sister |
---|---|
작자 | 유정린 |
간행시기 | 1664년 |
기탁처 | 해남윤씨 녹우당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7.0×48.0㎝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장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1664년(현종5) 12월 26일에 유정린(柳廷隣)이 누나인 윤인미(尹仁美) 처 전주유씨(全州柳氏)에게 보낸 재산의 분재와 관련된 내용의 간찰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664년(현종5) 12월 26일에 유정린(柳廷隣)이 누나인 윤인미(尹仁美) 처 전주유씨(全州柳氏)에게 보낸 재산의 분재와 관련된 내용의 간찰이다. 1664년 12월 22일에 유정린·유정주(柳廷舟)와 사위 정운한(鄭雲漢)·이도전(李道全) 등 10남매는 부모인 유항(柳恒)과 광주안씨(廣州安氏)의 재산을 서로 화회(和會)하여 분집(分執)하였다. 이때 해남에 살고 있던 윤인미와 전주유씨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유정린은 부모의 재산을 분재하는 과정과 전주유씨에게 분재된 전답과 노비 등의 내역을 간찰을 통해 전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 전주유씨가 보낸 간찰에서 자신의 몫으로 분재된 전답과 노비는 부모의 제사에 사용할 것을 당부한 내용에 대하여 자세한 의견을 구하고 있다. 끝으로 여러 동생들이 서명한 화회문기(和會文記)를 함께 보낸다는 내용으로 간찰을 마치고 있다. 1664년 12월 22일에 작성된 유정린 등 10남매의 화회문기는 현재 해남윤씨 연동종택에 보관되어 있다.[1]
분재 당시의 전주유씨 관련 정보
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가 부모의 재산을 나눠가질 때 작성한 문서로 1664년 에 윤인미 처 전주유씨와 그녀 형제들이 부모 유항(柳恒) 부부의 재산을 서로의 협의 하에 화회분집한 문서이다. 상속 대상자는 사위 윤인미를 포함하여 적자녀 10인이다. 평균분급 원칙에 의거하여 재산을 분집하였으나, 사마시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사마별급이 추가로 주어졌다. 화회분집한 재산의 총량은 노비 152구, 논 280여 마지기, 밭 80여 日耕으로 많은 양이지만 이번 분재를 통해 10남매가 평균분급하면서 이들의 재산은 현저히 영세해졌다. 이와 같이 평균분급의 지속은 양반 가문의 재산 영세화의 계기가 되었다. 17세기 중반 全州柳氏家 재산상속의 규모와 관행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2]
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문서자료관에는 "1664년 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 분재기(分財記)[1]"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유정린 분재 편지 | 유정린 | A는 B이 지었다 | 1664년 |
윤인미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전주유씨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유정주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정운한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이도전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유항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광주안씨 | 유정린 분재 편지 | A는 B에 언급된다 | 1664년 |
유정린 분재 편지 | 해남윤씨 연동종택 | A는 B에 보관되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64년 | 유정린 분재 편지이 작성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유정린 분재 편지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76쪽.
- ↑ 1664년 윤인미 처 전주유씨 남매 분재기(分財記)",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참고문헌
- 단행본
-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 國學振興硏究事業推進委員會 編輯, 『古文書集成/ 第3-1卷 & 第3-2卷: 海南尹氏篇 』,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온라인 참조: "고문서집성 3-1권 & 3-2권",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정보관』online . - 崔承熙,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지식산업사, 1989
- 문숙자,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 경인문화사, 2004
- 安承俊,「16-18世紀 海南尹氏家門의 土地․奴婢 所有實態와 經營 -海南尹氏古文書를 中心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학위논문, 1987
- 전경목, 「分財記를 통해서 본 分財와 奉祀 慣行의 변천」, 『古文書硏究22』, 한국고문서학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