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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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나무는 가지가 축 처진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높이는 6m, 가슴 높이 둘레는 2.9m, 밑동의 둘레는 3.45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8.4m, 서쪽이 9.2m, 남쪽이 10.3m, 북쪽이 10m이다. | + | 이 나무는 가지가 축 처진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높이는 6m, 가슴 높이 둘레는 2.9m, 밑동의 둘레는 3.45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8.4m, 서쪽이 9.2m, 남쪽이 10.3m, 북쪽이 10m이다.<ref>임원현,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500354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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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희귀한 모습을 한 이 나무는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ref>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5431500 반송]",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국어사전』<sup>online</sup></online>, 국립국어원.</html></ref>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B%8F%84_%EC%9A%B4%EB%AC%B8%EC%82%AC_%EC%B2%98%EC%A7%84%EC%86%8C%EB%82%98%EB%AC%B4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wikipedia.</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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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에도 수차례 방화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이 처진 소나무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에 칡덩굴이 감겨 있어서 불길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상당히 컸다고 전해진다. - 향토 |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에도 수차례 방화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이 처진 소나무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에 칡덩굴이 감겨 있어서 불길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상당히 컸다고 전해진다. - 향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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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위키 |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위키 | ||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향토 |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향토 | ||
− |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문화재청 | + |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문화재청 <ref>박상국,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5561 교장도감]",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운문사에서는 매년 봄에 이 나무에 12말의 막걸리를 물 12말에 타서 뿌려주는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두산 | + | |
+ | 운문사에서는 매년 봄에 이 나무에 12말의 막걸리를 물 12말에 타서 뿌려주는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두산<ref>박상국,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5561 교장도감]",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지식관계망'''== | =='''지식관계망'''== |
2017년 5월 18일 (목) 18:11 판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淸道 雲門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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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이후 추가 예정 | |
대표명칭 |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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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Weeping Pine Tree of Unmunsa Temple, Cheongdo |
한자 | 淸道 雲門寺 - |
주소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
문화재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180호 |
문화재 지정일 | 1966년 08월 25일 |
소유자 | 청도 운문사 |
관리자 | 청도군 |
크기 | 높이 6m |
건립시대 |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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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소나무.[1]
내용
이 나무는 가지가 축 처진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높이는 6m, 가슴 높이 둘레는 2.9m, 밑동의 둘레는 3.45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8.4m, 서쪽이 9.2m, 남쪽이 10.3m, 북쪽이 10m이다.[2]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희귀한 모습을 한 이 나무는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3]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4]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에도 수차례 방화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이 처진 소나무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에 칡덩굴이 감겨 있어서 불길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상당히 컸다고 전해진다. - 향토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위키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향토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문화재청 [5]
운문사에서는 매년 봄에 이 나무에 12말의 막걸리를 물 12말에 타서 뿌려주는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두산[6]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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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 청도 운문사 | A는 B에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 DG GREENKOREA, "천연기념물 제180호_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YouTube, 게시일: 2016년 8월 11일.
- 한국불교 대표방송 BTN, "(BTN뉴스)삼짇날, 운문사 처진소나무 막걸리 공양", YouTube, 게시일: 2016년 4월 11일.
주석
- ↑ 이창복,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임원현,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 "반송",
『네이버 국어사전』online , 국립국어원. - ↑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위키백과』online , wikipedia. - ↑ 박상국, "교장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박상국, "교장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