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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2일 (토) 16:09 판
신전자초방 | |
한자명칭 | 新傳煮硝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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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his book writes a new gunpowder manufacturing method acquired from Beijing, and explains the process of learning it. |
작자 | 김지남 |
작성시기 | 1796년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3-292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0×20.1㎝ |
판본 | 목판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역관 김지남이 숙종 대에 북경에 가서 연구해온 새로운 화약 제조법을 기록하고, 제조법의 습득 유래를 자세히 설명한 책
내용
역관譯官 김지남金指南, 1654~?이 숙종肅宗 대에 북경에 가서 연구해온 새로운 화약 제조법을 기록하고, 제조법의 습득 유래를 자세히 설명한 책이다. 10조로 나뉘어 설명된 방법은 각 조마다 한글로 언해하였다. 이책에 소개된 화약 달이는 방법은 대체로 종전에 있던방법들과 비슷하나 몇 가지 중요한 새로운 과정을 밝힘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성능을 좋게 하였다. 이 책은 화약을 제조하는 방법과 과정을 상세하게설명하였다. 저자는 책 말미에 붙인 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서술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왕래하면서 겪었던 일을 서술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제조법에 관한 문헌 중 하나이다. 『신전자초방』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약 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병서 연구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18세기 국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본 장서각 소장본은 영중추부사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건의로 1698년숙종24에 간행된 것을 뒤에 우의정 윤시동尹蓍東, 1729~1797의 건의로 1796년정조20에 중간한 것이다.[1]
부연설명
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취토·취회·교합·사수·오수·재련·삼련·합제의 여덟 가지 공정단계와 물을 달이고 재를 만들기 위하여 쓰는 풀 매는 작업과 재련 때 쓰는 아교물에 대한 항목들이 이 책의 본문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책 끝에 붙인 득초법시말(得硝法始末)에서 우리 나라의 자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짧게 서술하고, 본인이 이 새로운 방법을 얻기 위하여 중국을 내왕하면서 죽을 뻔한 기록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서술하였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 극히 드물게 남아 있는 화약제조법에 관한 문헌 중의 하나이다. 14세기 말에 최무선(崔茂宣)이 저술한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은 전하지 않고 다만 1635년(인조 13)에 간행된 이서(李曙)의 『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이 전해져, 이것과 더불어 이 책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 화약제조기술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 장서각도서에 있다.[2]
『신전자초방』에서 나오는 내용은 염초(焰硝)를 정제하고 그것을 유황(硫黃)과 섞어 화약제조 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화약을 만들시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료는 앞에서 언급한 두 재료와 별도로 목탄(木炭)이 필요하다. 이들 3개의 재료 배합 비율은 염초 5: 유황 1: 목탄 1 이다. 즉 5:1:1 비율로 염초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화약 제조에 관한 정리된 내용은 명 말기『무비지(武備志)』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후 청나라 과학관련 고문헌에서는 이 책의 화약제조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중국의 화약제조 기술이 『신전자초방』에 큰 영향을 주었다.[3]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염초 제작법은 조선도 알고 있었다. 염초가 생성되는 조건은 기후가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며, 땅 자체에 염분 성분이 존재해야 한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성분으로 질산 칼륨(Potassium Nitrate)이 있으며, 이들이 존재하는 장소는 염전이나 인체의 소변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조선은 염전 생산 지역이나 화장실 지역에서 염초를 생산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은 세종에서 문종시기(1418~1453) 실록을 보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진왜란 이후로 염초 정제기술이 사라졌고, 이후 인조(1623~1649)시기 『신전자초방』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4]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신전자초방 | 숙종 | A는 B에 ~있다 | |
신전자초방 | 김지남 | A는 B에 ~있다 | |
신전자초방 | 득초법시말 | A는 B에 ~있다 | |
신전자초방 | 신천자초방 | A는 B에 ~있다 | |
신전자초방 | 남구만 | A는 B에 ~있다 | |
신전자초방 | 윤시동 | A는 B에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796 | 신전자초방이 간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신전자초방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다 |
참고문헌
- 사료
-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