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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섬]]은 대한민국의 섬유제조 전문회사로, 1964년 [[한일합섬|한일합성섬유공업]]으로 출발하였다가, 1993년 '[[한일합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D%BC%ED%95%A9%EC%84%AC 한일합섬]", <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ref><br/> | [[한일합섬]]은 대한민국의 섬유제조 전문회사로, 1964년 [[한일합섬|한일합성섬유공업]]으로 출발하였다가, 1993년 '[[한일합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D%BC%ED%95%A9%EC%84%AC 한일합섬]", <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ref><br/> | ||
[[한일합섬]]은 주로 섬유류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체로, [[한일그룹]]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1998년 회사가 부도처리되었고, 2007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동양그룹]] 계열사로 편입하였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1927 한일합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05월 16일.</ref> | [[한일합섬]]은 주로 섬유류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체로, [[한일그룹]]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1998년 회사가 부도처리되었고, 2007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동양그룹]] 계열사로 편입하였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1927 한일합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05월 16일.</ref> | ||
− | 해당 작품은 [[한일합섬]] | + | 해당 작품은 [[한일합섬]] 마산 공장에서 [[아크릴섬유]]를 생산하는 장면을 담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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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김한수]]는 광복 직후 부산에서 직물류와 복지류 도매상을 경영하여 축적한 경험과 자본을 가지고, 1953년 식품과 한천(寒天)을 수출하고 복지를 수입하는 대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56년에는 부산에 경남모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복지를 직접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 창업자 [[김한수]]는 광복 직후 부산에서 직물류와 복지류 도매상을 경영하여 축적한 경험과 자본을 가지고, 1953년 식품과 한천(寒天)을 수출하고 복지를 수입하는 대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56년에는 부산에 경남모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복지를 직접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 ||
1960년대 들어 세계섬유시장은 화학섬유와 합성섬유의 붐에 들떠 있었고, 원모를 대용하는 아크릴은 나일론·폴리에스터와 함께 ‘마법의 섬유’로 소비자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 1960년대 들어 세계섬유시장은 화학섬유와 합성섬유의 붐에 들떠 있었고, 원모를 대용하는 아크릴은 나일론·폴리에스터와 함께 ‘마법의 섬유’로 소비자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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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김한수는 시류에 대응하기 위하여 아크릴섬유에 눈을 돌렸다. 그는 먼저 중앙합섬을 세워 모방업과 합섬업을 복합적으로 운영해오다가 1964년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 이 때 김한수는 시류에 대응하기 위하여 아크릴섬유에 눈을 돌렸다. 그는 먼저 중앙합섬을 세워 모방업과 합섬업을 복합적으로 운영해오다가 1964년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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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 마산에 하루 7.5t의 아크릴을 생산하는 공장을 준공하였다. 아크릴제품은 생산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서 시설확장이 필요하였으며,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국제규모화가 불가피하였다. | 1967년 1월 마산에 하루 7.5t의 아크릴을 생산하는 공장을 준공하였다. 아크릴제품은 생산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서 시설확장이 필요하였으며,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국제규모화가 불가피하였다. | ||
1969년 1월에 김해에 방적공장이 준공됨을 기점으로 하여 1973년에 마산공장, 1974년에 수원공장, 1975년에 대구공장을 각각 증설하여 섬유종합메이커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 1969년 1월에 김해에 방적공장이 준공됨을 기점으로 하여 1973년에 마산공장, 1974년에 수원공장, 1975년에 대구공장을 각각 증설하여 섬유종합메이커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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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에는 마산에 국내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종업원을 위한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근로소녀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산학협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그 뒤 1979년 3월 김해, 1980년 3월 대구와 수원에도 부설학교를 설립하였다. | 1974년 4월에는 마산에 국내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종업원을 위한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근로소녀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산학협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그 뒤 1979년 3월 김해, 1980년 3월 대구와 수원에도 부설학교를 설립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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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말 당시 주요 사업은 폴리아크릴화이바 제조, 가공 및 판매, 양모톱 제조, 가공 및 판매업, 섬유, 의복, 침장류 및 가죽제품제조 및 판매업, 방적, 편직, 염색 가공업, 토목, 건축, 포장공사, 설계 및 청부업, 주택건설업, 부동산의 임대, 판매, 관리에 관한 사업, 해외건설 및 해외공사수주업, 의약품, 위생용품 및 기타 화학제품 제조판매업 등이었다. | 1996년 말 당시 주요 사업은 폴리아크릴화이바 제조, 가공 및 판매, 양모톱 제조, 가공 및 판매업, 섬유, 의복, 침장류 및 가죽제품제조 및 판매업, 방적, 편직, 염색 가공업, 토목, 건축, 포장공사, 설계 및 청부업, 주택건설업, 부동산의 임대, 판매, 관리에 관한 사업, 해외건설 및 해외공사수주업, 의약품, 위생용품 및 기타 화학제품 제조판매업 등이었다. | ||
주요 제품과 구성비율은 분양수입 20.3%, 아크릴화이바 17.8%, 매입상품 17.0%, 봉제 16.4%, 아크릴사 10.2%, 공사수입 5.1% 등이었다. | 주요 제품과 구성비율은 분양수입 20.3%, 아크릴화이바 17.8%, 매입상품 17.0%, 봉제 16.4%, 아크릴사 10.2%, 공사수입 5.1% 등이었다. |
2017년 4월 18일 (화) 17:08 판
한일합섬 | |
작가 | 김종하 |
---|---|
제작연도 | 1973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광공업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미상 |
개요
한일합섬은 대한민국의 섬유제조 전문회사로, 1964년 한일합성섬유공업으로 출발하였다가, 1993년 '한일합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1]
한일합섬은 주로 섬유류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체로, 한일그룹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1998년 회사가 부도처리되었고, 2007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어 동양그룹 계열사로 편입하였다.[2]
해당 작품은 한일합섬 마산 공장에서 아크릴섬유를 생산하는 장면을 담고있다.
설명
작품 소재
작품의 소재는 한일합섬으로,
창업자 김한수는 광복 직후 부산에서 직물류와 복지류 도매상을 경영하여 축적한 경험과 자본을 가지고, 1953년 식품과 한천(寒天)을 수출하고 복지를 수입하는 대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56년에는 부산에 경남모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복지를 직접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 들어 세계섬유시장은 화학섬유와 합성섬유의 붐에 들떠 있었고, 원모를 대용하는 아크릴은 나일론·폴리에스터와 함께 ‘마법의 섬유’로 소비자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때 김한수는 시류에 대응하기 위하여 아크릴섬유에 눈을 돌렸다. 그는 먼저 중앙합섬을 세워 모방업과 합섬업을 복합적으로 운영해오다가 1964년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67년 1월 마산에 하루 7.5t의 아크릴을 생산하는 공장을 준공하였다. 아크릴제품은 생산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서 시설확장이 필요하였으며,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국제규모화가 불가피하였다. 1969년 1월에 김해에 방적공장이 준공됨을 기점으로 하여 1973년에 마산공장, 1974년에 수원공장, 1975년에 대구공장을 각각 증설하여 섬유종합메이커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1974년 4월에는 마산에 국내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종업원을 위한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근로소녀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산학협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그 뒤 1979년 3월 김해, 1980년 3월 대구와 수원에도 부설학교를 설립하였다.
1998년 IMF 경제위기 여파로 인해 정부로부터 퇴출기업으로 선정되었다. 1996년 말 당시 주요 사업은 폴리아크릴화이바 제조, 가공 및 판매, 양모톱 제조, 가공 및 판매업, 섬유, 의복, 침장류 및 가죽제품제조 및 판매업, 방적, 편직, 염색 가공업, 토목, 건축, 포장공사, 설계 및 청부업, 주택건설업, 부동산의 임대, 판매, 관리에 관한 사업, 해외건설 및 해외공사수주업, 의약품, 위생용품 및 기타 화학제품 제조판매업 등이었다. 주요 제품과 구성비율은 분양수입 20.3%, 아크릴화이바 17.8%, 매입상품 17.0%, 봉제 16.4%, 아크릴사 10.2%, 공사수입 5.1% 등이었다. 관계회사로는 국제상사, 동서석유화학, 진해화학, 남주개발, 신남개발, 한일리조트, 한일레저개발, 연합물산 등이 있었다. 1996년 당시 총자산은 1조 4,254억 원, 자본금 976억 원, 연간매출액 5,850억 원이었다. 종업원은 관리사무직 1,230명, 생산직 996명 등을 합쳐 2,226명이었다.
작품 배경
시각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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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이미지맵 에디터
작품과 비슷한 구도의 소양강댐 사진[3]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김종하 | 김종하-한일합섬 | A는 B를 그렸다 | 1973년 |
김종하-한일합섬 | 소양강댐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 |
김종하-한일합섬 | 소양호 |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 |
김종하-한일합섬 | 소양강 |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 |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한일그룹 의 모회사임
동양그룹 에 포함된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73년 | 김종하가 김종하-한일합섬을 그렸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975795 | 127.819478 | 김종하-한일합섬은 소양강댐을 소재로 한다 @ |
그래프
참고문헌
- "휴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 (2017년 2월 6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