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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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문식 도크]]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세계 5위) [[인천항 도크]]는 [[인천항 제1도크]]와 [[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작품은 [[인천항]] 내항에 입항하기 위해 [[인천항 제2도크]]에 접안한 웅장한 선박을 담고 있다.<ref>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3년, 51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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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7102 인천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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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은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였는데, [[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7102 인천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ref><br/>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을 1935년에 착공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br/>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을 1935년에 착공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br/>
 
종전 후 1974년, [[인천항 제2도크]]가 완공되면서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br/>
 
종전 후 1974년, [[인천항 제2도크]]가 완공되면서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br/>

2017년 4월 18일 (화) 01:29 판


정창섭-인천항도크
정창섭-인천항도크-1975s.jpg
작가 정창섭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건설/교통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개요

갑문식 도크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세계 5위) 인천항 도크인천항 제1도크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작품은 인천항 내항에 입항하기 위해 인천항 제2도크에 접안한 웅장한 선박을 담고 있다.[1]

설명

작품 소재

작품의 소재는 인천항 제1도크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진 인천항 도크인천항 제2도크이다.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는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위한 구조물을 갑문이라 한다.[2]
인천항은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였는데, 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3]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을 1935년에 착공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종전 후 1974년, 인천항 제2도크가 완공되면서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은 인천항이다.

시각적 안내

이성계이오로첩목아오녀산성정창섭 「인천항도크」 1975
이 그림에 대한 정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정창섭-인천항도크 ~에 의해 그려지다 정창섭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정창섭-인천항도크 제작연도 1975년
총무처 소장처 1979년
인천시민회관 소장처 (임대) 1991년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정창섭-인천항도크 소장처 인천항 37.463812 126.625059


그래프

임시


참고문헌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1992년

주석

  1.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3년, 51쪽.
  2. "갑문", 『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online, 두산백과.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
  3. "인천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