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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승탑비문 Top icon}} {{사찰사지정보 |사진= |대표명칭=구례 연곡사 |영문= Silsangsa Temple, Namwon |한자=求禮 鷰谷寺 |이칭= |지정번호= |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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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ref>"[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실상사]", 김현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수정일: 2012년 7월 1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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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지리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ref>"[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연곡사]", 김위석,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4월 11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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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828년(신라 흥덕왕 3)에 [[홍척]]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구산선문|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처음 세우면서 창건하였다.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홍척과 함께 당나라에 갔다온 [[도의]]는 가지산에 들어가서 [[장흥 보림사]]를 세웠다.) 실상사는 그 뒤 2대조 [[수철]]을 거쳐 3대조 편운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ref>"[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실상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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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는 전해지지 않으며 일제시대 만우 정병헌 스님이 기록한 『지리산화엄사』말미에 '연곡사 사적'을 기술하고 있어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연곡사는 현재 남아있는 유적의 모양새나 명문 등을 살펴볼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는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ref>이태호,황호균,『월간 해인』, 통권 173호, 1993, 온라인참조: [http://haeinji.danah.kr/contents/default_print.html?ct_no=2942 지리산 연곡사 불교 유적 - 선사의 묘탑을 지고 비상하려는 극락조], 고찰의 명보를 찾아서</ref>그 뒤 연곡사는 임진왜란 때에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뒤 [[태능|태능(太能)]]이 중창하였다. 1907년에는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이 의병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 뒤 1942년에 다시 중건을 하였으나,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1981년 새 대웅전을 짓는 공사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시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ref>"[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연곡사]", 김위석,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4월 11일</ref>
4월 10일</ref>  
 
  
이후 고려시대 , 조계종 실상산파로 종명을 개칭하였는데 이 때가 실상사의 최대 융성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127년~113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도 창건 이후 약 300년이 지나 대대적으로 중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ref>"[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실상사]", 김현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수정일: 2012년 7월 1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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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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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는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타버린 뒤 폐사되다시피하여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에 기거해야했다. 숙종 대에 이르러 수도승 300여명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36동의 건물을 다시 세웠다. 이후 순조 21년(1821)에도 중건되었으나 고종 20년(1883) 함양 출신 양재묵, 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아까운 사찰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이듬해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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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43789&cid=42840&categoryId=42851 실상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0일.</ref> <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62050 실상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4월 1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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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는 [[피아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직전리 조금 못미처 자리잡고있다. 피아골은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의 아지트였기에, 이들을 토벌하려는 군경과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피아골의 이름도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에 붙여진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옛날 이곳에서 오곡의 하나인 식용 피[稷]를 많이 가꾸었기 때문에 피밭골이라 하였다가 바뀐 이름이라고 한다. <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43763&cid=42840&categoryId=42851 연곡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1일.</ref>
  
1911년 전국의 사찰을 통괄하는 30본산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실상사는 1912년 법찰 대본산인 [[합천 해인사]]의 말사로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새로 제정된 대한불교 조계종 종헌에 의한 전국 24 교구제에 따라 실상사는 제17교구 [[김제 금산사]]의 말사가 되었다.<ref>"[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실상사]", 김현중,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수정일: 2012년 7월 1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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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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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는 1745년(영조 21)에 밤나무로 만드는 왕실의 신주목(神主木, 위패를 만드는 나무)을 봉납하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이때 연곡사 주지가 도제조都提調로 임명되어 비로소 지방관 향리들의 경제적 침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ref>"[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연곡사]", 김위석,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4월 11일</ref> 1895년쯤에도 여전히 왕가에 신주목을 봉납하였는데, 밤나무 남용으로 문제가 생겨 망할지경에 이르자 승려들이 절을 떠나 결국 절이 폐쇄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ref>"[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where_tour.jsp?cid=126363 연곡사]",관광지정보, <html><online style="color:purple">『대한민국 구석구석』<sup>online</sup></online></html>, 한국관광공사. 최종확인: 2017년 04월 11일.</ref>
===지리===
 
실상사 경내에서 한 바퀴를 휘돌아보면 부드러운 지리산 산자락이 꽃잎처럼 절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음을 한눈에 알게 된다. 풍수지리가들은 이를 ‘연꽃잎이 연꽃열매를 삥 둘러싼 모습’으로 표현한다.
 
<ref>『대한민국 여행사전』, 터치아트,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5152&cid=50392&categoryId=50392 실상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0일.</ref>
 
실상사는 넓은 산간분지의 산록완사면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산골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평탄한 들판이라는 느낌을 갖게한다. 실상사 주위의 산세를 개관하면, 여러 산봉우리들이 산내면을 감싸고 있다. 또 실상사는 산간분지내에 있으면서 하천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어 동남, 북서, 남서 등 3방향이 개방성을 띠고 있는 산지중의 교통요지이다. 실상사는 지리산의 주연봉(主連峰)에서 나누어지는 3개의 지맥 중에서 삼정산이 길게 뻗어 내린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실상사가 마치 꽃잎으로 덮여있는 꽃밥처럼 보이는 이유도 3개의 지맥이 실상사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12&cp_code=cp0422&index_id=cp04220056&content_id=cp042200560001&search_left_menu=2 실상사]", 한국의 풍수지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최종확인: 2014년 4월 10일</ref>
 
  
  

2017년 4월 11일 (화) 19:54 판


구례 연곡사
(求禮 鷰谷寺)
대표명칭 구례 연곡사
한자 求禮 鷰谷寺
주소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교구정보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자 연기
경내문화재 구례 연곡사 동 승탑, 구례 연곡사 북 승탑,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지리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1]


개요

역사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는 전해지지 않으며 일제시대 만우 정병헌 스님이 기록한 『지리산화엄사』말미에 '연곡사 사적'을 기술하고 있어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연곡사는 현재 남아있는 유적의 모양새나 명문 등을 살펴볼 때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는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그 뒤 연곡사는 임진왜란 때에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뒤 태능(太能)이 중창하였다. 1907년에는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이 의병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 뒤 1942년에 다시 중건을 하였으나,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1981년 새 대웅전을 짓는 공사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시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사찰이름의 유래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지리

연곡사는 피아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직전리 조금 못미처 자리잡고있다. 피아골은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의 아지트였기에, 이들을 토벌하려는 군경과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피아골의 이름도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에 붙여진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옛날 이곳에서 오곡의 하나인 식용 피[稷]를 많이 가꾸었기 때문에 피밭골이라 하였다가 바뀐 이름이라고 한다. [4]

특징

연곡사는 1745년(영조 21)에 밤나무로 만드는 왕실의 신주목(神主木, 위패를 만드는 나무)을 봉납하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이때 연곡사 주지가 도제조都提調로 임명되어 비로소 지방관 향리들의 경제적 침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5] 1895년쯤에도 여전히 왕가에 신주목을 봉납하였는데, 밤나무 남용으로 문제가 생겨 망할지경에 이르자 승려들이 절을 떠나 결국 절이 폐쇄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6]


갤러리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828년 홍척이 실상사를 창건했다.
1127~1130년 실상사가 대대적으로 중창되었다.
정유재란기 실상사가 폐허가 되어 이후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이 백장암에 기거하였다.
1690년 300여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실상사를 다시 중창하였다.
1882년 실상사에 방화가 일어나 사찰 건물들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실상사가 합천 해인사의 말사로 편입되었다.
해방이후 실상사가 김제 금산사의 말사가 되었다.
1996~2005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상사 창건 당시 가람의 규모와 역사적 변천을 확인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석등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남원 실상사 A는 B에 있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 수철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수철 A는 B를 위한 비이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홍척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홍척 A는 B를 위한 비이다
홍척 남원 실상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수철 남원 실상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남원 실상사 실상산문 A는 B에 포함된다
실상산문 선종 A는 B에 포함된다
홍척 도의 A는 B와 관련있다


참고문헌

주석

  1. "연곡사", 김위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4월 11일
  2. 이태호,황호균,『월간 해인』, 통권 173호, 1993, 온라인참조: 지리산 연곡사 불교 유적 - 선사의 묘탑을 지고 비상하려는 극락조, 고찰의 명보를 찾아서
  3. "연곡사", 김위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4월 11일
  4.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연곡사",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최종확인: 2017년 04월 11일.
  5. "연곡사", 김위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4월 11일
  6. "연곡사",관광지정보,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한국관광공사. 최종확인: 2017년 0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