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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40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마하던 [[곽재우]]는 재산을 정리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붉은 비단으로 군복을 지어입고 백금으로 투구를 꾸미고 그 양편에 날개를 달아 백마를 타고 군사를 지휘하니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天降紅衣將軍」이라고 불렀다. 물자가 부족했던 그의 부대는 관군이 도망가 비어있던 초계성(草溪城)으로 들어가 그곳의 무기와 군량을 확보해 사용했는데, 조정에 오해를 받아 토적(土賊 : 지방에서 일어난 도둑 떼)으로 고발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유사 [[김성일]]의 해명으로 위기를 넘긴 [[곽재우]] 부대는 그 뒤 의령을 거점으로 현풍ㆍ영산(靈山:지금 창녕)ㆍ진주 등 낙동강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중요한 전공을 세웠다.<ref>김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10901 곽재우]",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캐스트』「인물한국사」<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 최종확인: 2017년 02월 15일.</ref><br/> | 1592년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40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마하던 [[곽재우]]는 재산을 정리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붉은 비단으로 군복을 지어입고 백금으로 투구를 꾸미고 그 양편에 날개를 달아 백마를 타고 군사를 지휘하니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天降紅衣將軍」이라고 불렀다. 물자가 부족했던 그의 부대는 관군이 도망가 비어있던 초계성(草溪城)으로 들어가 그곳의 무기와 군량을 확보해 사용했는데, 조정에 오해를 받아 토적(土賊 : 지방에서 일어난 도둑 떼)으로 고발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유사 [[김성일]]의 해명으로 위기를 넘긴 [[곽재우]] 부대는 그 뒤 의령을 거점으로 현풍ㆍ영산(靈山:지금 창녕)ㆍ진주 등 낙동강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중요한 전공을 세웠다.<ref>김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10901 곽재우]",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캐스트』「인물한국사」<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 최종확인: 2017년 02월 15일.</ref><br/> | ||
2017년 4월 10일 (월) 17:01 판
홍의장군 곽태우 | |
작가 | 김태 |
---|---|
제작연도 | 1976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전쟁 |
분류 | 유화 |
소장처 | 전쟁기념관 |
목차
개요
1592년 5월(선조 25년), 임진왜란 시 정암진(鼎巖津: 현 경남 함안) 나루터에서 강을 건너오는 왜군을 섬멸하는 홍의장군 곽재우.
설명
작품 소재
1592년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40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마하던 곽재우는 재산을 정리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붉은 비단으로 군복을 지어입고 백금으로 투구를 꾸미고 그 양편에 날개를 달아 백마를 타고 군사를 지휘하니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天降紅衣將軍」이라고 불렀다. 물자가 부족했던 그의 부대는 관군이 도망가 비어있던 초계성(草溪城)으로 들어가 그곳의 무기와 군량을 확보해 사용했는데, 조정에 오해를 받아 토적(土賊 : 지방에서 일어난 도둑 떼)으로 고발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유사 김성일의 해명으로 위기를 넘긴 곽재우 부대는 그 뒤 의령을 거점으로 현풍ㆍ영산(靈山:지금 창녕)ㆍ진주 등 낙동강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중요한 전공을 세웠다.[1]
작품 배경
왜군의 선발대가 정암나루에 다다러 강을 건너기 위하여 건조한 곳을 가려 나무를 꽃아 행군로를 표시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곽재우는 밤을 이용하여 그것을 뽑아 진흙이 많은 곳에 꽃아 두었다. 부근에 군사를 매복하고 왜군을 기다려 새벽에 왜군의 대부대가 강을 건너자, 적이 표지만 보고 강을 건너다 진흙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틈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였다.br/>
작품 구도
강을 건너는 왜군들이 매복한 의병들의 공격을 받아 전열이 흐트러져 혼란스러운 상태로, 말을 탄 채 강에 떠내려 가거나 화살을 맞아 엎어져 있는 모습이 왼편에 보인다. 그림 중앙에는 횃불을 든 휘하 장수가 의병들을 독려하고 있다. 하늘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고 왜군의 진영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왼편 아래의 의병은 상모 장식이 달린 전립을 쓰고 왼손에는 장방형 방패를 등뒤에는 전통을 메고 있다. 오른손에 창을 들고 힘껏 강 건너편의 적을 향해 던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 옆의 웅크린 의병은 화살촉에 화약포를 부착한 불화살인 화전을 활시위에 메기고 있다. 또한 그 뒤의 의병은 언월도를 들고 있으며 그림 곳곳에서 명나라 군에 의해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전래된 삼지창(당파)이 보이는데, 당시 의병의 무장 수준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그림에서 곽재우는 令자 기치와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 씌여진 깃발 아래 갈색 말에 올라 칼을 뽑아 들고 의병들을 지휘하고 있다. 대부분의 의병들이 흰옷에 붉은 색 겉옷을 입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시각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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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이미지맵 에디터
<imagemap> 파일:김태-정암진싸움(곽재우)-1976s.jpg |김태 「홍의장군 곽재우」 1976|800px|center rect 481 17 703 194 곽재우 </image>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김태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 A는 B를 그렸다. | 1976년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 곽재우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 정암진전투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76년 | 김태가 김태-홍의장군 곽재우를 제작하였다. |
1979년 | 총무처가 김태-홍의장군 곽재우를 대여하였다. |
1998년- | 전쟁기념관가 김태-홍의장군 곽재우를 소장하고 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32103 | 126.914133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이 전쟁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
35.314155 | 128.294878 | 김태-홍의장군 곽재우가 정암진을 배경으로 한다. |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의원동우회,『민족기록화, 구국위업편』, 한국도서출판공사, 1981.